[심흥섭 칼럼] 4.2km의 동그라미로 자유를 그리는 섬, 가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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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는 모슬포 포구가 있다. 뒤로는 모슬봉(187m)과 가시악(123m)이 있고, 그 곳에서 바라보는 포구의 야경은 마치 잔잔하면서도 불야성을 이루는 듯 하다. 그러면서 반영으로 비치는 걷기 좋은 섬,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운진항에서 편도 약 10 여 분 거리로 하루 7번 왕복 운행하는 정기 여객선을 타고 손 내밀어 잡힐 듯 한 수평선 너머로 가파도에 도착해서 느리게 느리게 천천히 천천히 걸어보았다.
유채꽃이 만발하고 벚꽃이 흐드러지면서 봄의 향기를 듬뿍 흩날리던 섬을 찾았다. 8개의 유인도와 54개의 무인도가 군주를 호위하는 병사들의 모습처럼 늠름하면서도 유유자적 지키고 있는 그 곳으로의 발걸음, 제주도…
세계적으로 대유행인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떨치면서 국내 여행도 어느 곳이든 발길이 뜸했다. 그나마 다른 지역에 비해서 확진자가 적은 제주도의 발걸음은 가능한 머무는 곳에서 조용히 쉼 하며, 또 하나의 물길을 건넜다.
4.2km의 해안선이 매혹적으로 유혹하고, 최고 높이 20.5m의 가파도는 이웃한 섬 마라도에 약 2.5배의 크기다. 또한 제주도의 부속 섬 중에서 네 번째로 크다. 상동항에 도착하면서 여러 건물 중에 알록달록 무지개빛 작은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발걸음을 하니, 배꼽시계를 유혹하는 곳이었다. 처음 방문한 섬 한 바퀴의 속내가 궁금해 먼저 돌아보고, 유혹의 한계에 부딪치는 곳에서 가파도의 맛을 느껴보고자 했다.
상동항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사람들 특히, 청춘들은 자전거를 대여해서 조금은 여유로운 시선을 담으려 한다. 예약이 안되기 때문에 섬을 찾는 사람이 많은 날에는 여객선에서 늦게 내리면 대여 마감이 되는 경우가 있다.
북서쪽 해안가에는 큰 암석이 큰 바람을 일으킨다는 ‘보름 바위’가 있다. 크기는 상하가 약 4m, 좌우가 약 3m로 함부로 바위 위로 올라가거나 걸터앉으면 태풍이나 강풍이 불어와 큰 재난이 생긴다고 해서 주민들은 신성 시 한다. 고양이와 비슷한 모양에서 이름이 붙여진 ‘고냉이(고양이의 제주도 방언)돌’, 두 곳의 큰 돌을 지나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입구에 도달하니 파손된 자전거들이 군데 군데 널부러져 있었다. 그 모습은 약 18만 평의 푸르른 청보리가 산들거리는 청정 지역을 외면하며 아쉬움을 불러왔다.
해안길을 따라 걸으며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마라도는 놀러오라 하고, 바위에서 멋드러진 폼으로 물고기를 잡는 강태공은 유유자적 세월도 함께 낚고 있었다. 이 곳 저 곳 사진을 담으며 약 1시간 만에 하동포구에 도착한다. 큰 바위를 가리키는 까마귀돌과 하동 주민들을 수호해주는 할망당이 있고, 여러 대의 동력선이 드나들며 활기찬 가파도를 말해주는 듯 했다. 또한, 좀녀(해녀의 제주도 방언)들은 잡아온 전복, 소라, 해삼, 성게, 미역, 톳 등의 해산물들을 나누며 따뜻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포구를 지나 바로 마을로 올라서니 벽화가 예쁘게 그려진 골목길 사이로 공방, 갤러리, 중국 음식점이 성업중이었다. 상동항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음식점들을 뒤로 하고, 이 곳에서 해물짜장면의 유혹에 넘어갔다. 시금치를 재료에 넣어 반죽을 한 녹색 면은 식욕을 돋구고, 해초류 가시리와 톳은 면을 먹기 전에 에피타이저로 제격이었다. 어느 중국집에 뒤지지 않는 그 맛은 실내는 물론, 뒷마당까지 가득 채운 손님들로 알 수 있었다.
따로 또 같이…
맛있게 먹은 해물짜장면에 배를 한 번 쓰다듬고, 쉬엄쉬엄 또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좀녀들의 탈의실 역할을 하는 ‘불턱’과 바닷가의 샘 끄트머리로 담수를 일컫는 ‘돈물깍’ 등이 눈길을 끌었다.
매년 음력 1월에 마을의 제사(춘포제)를 모시는 ‘제단’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넓적한 자연석을 다듬어 북쪽에서 남향으로 설치했고, 윗 부분 왼쪽에는 가로 15cm, 세로 20cm의 돌을 만들어 포제신위명을 적은 종이를 붙인다. 지금도 제관으로 뽑힌 마을 남자 7명은 3박 4일동안 제단집에 머물며 부정을 피한 뒤 돼지와 닭 날 것을 제물로 받친다고 한다. 이곳에서 춘포제가 끝나면 서쪽 공동묘지 입구에서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토신제와 목축신을 위한 테우리제도 지낸다.
작은 선인장들이 귀엽게 인사하는 꽃밭을 지나며 그 사이로 자전거들이 지난다. 커플용 자전거는 걷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선이 집중되고, 나란히 손을 마주 잡고 걷는 커플은 유독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어멍, 아방 돌’이 나란히 하고 있다. 이 곳도 사람이 올라가면 파도가 높아진다고 해서 금기 시 하고 있는 곳이다.
앞서가는 다정한 연인을 응원하고, 다시 청보리 밭으로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제주도의 봄 축제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가파도의 산들거리는 청보리를 배경으로 연신 셔터를 누르며 추억을 남기려는 커플을 만날 수 있었다. 청춘만으로도 보기 좋은 그 모습을 담고 싶어 모델 제의를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어서 청보리밭에 아름답게 수놓은 청춘을 담을 수 있었다.
아니 벌써…! 가파도의 끄트머리이자 시작인 상동항의 건물이 보인다. 해안선 따라 한 바퀴 돌며 상쾌한 기분으로 가파도와 데이트 했는데, 저 건물은 왜 되돌아 갈 곳으로 느껴지는걸까? 이내 걸음은 셔터를 누르며 천천히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내딛었건만…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상동항에 도착했는데, 내 마음을 흠뻑 훔치는 그림이 그녀들로 하여금 그려지고 있는게 아닌가! 아무리 섬이지만, 편안한 테이블이나 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벗어 선착장 앞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연상시키듯이 자유를 마시는 모습에 카메라 셔터는 연신 그녀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 가파도는 4.2km의 큰 동그라미로 자유를 그리는 섬이었구나…!
심 흥섭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