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하고 건강한 휴식을 몸에 배이고 호텔을 나서는데, 직원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기예보를 보고 비 오는 날 예약을 해서 꼭 호텔의 한실 객실만을 이용한다는 어느 노인의 이야기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벤치에 앉아서 삶을 되돌아 본다. 너, 참 달콤하게 영근 과일이구나, 포도호텔…!
제주도의 오름과 초가집을 모티브로 설계된 포도 호텔은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한 송이의 포도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고품격 부띠끄 호텔이다. 2003년, 세계적인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 전시돼, 이타미 준의 대표작으로 선보이며 프랑스 문화훈장 ‘슈발리에’를 수상했다. 2013년에는 ‘아름다운 제주 7대 건축물’로도 선정되며 땅, 자연과 함께 숨 쉬는 곳이다.
한라산 품에서 영글어 잡히지 않는 영롱한 공기와도 같은 곳, 오래전부터 발길을 애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고품격 휴식이 머무는 곳답게 코로나 바이러스에 때 맞춰 방문하는 모든 고객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호텔의 모든 시설에 대해서 완벽하게 방역을 시행하고 있었다.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면 프런트 앞에 열화상 카메라가 설치돼있어 매뉴얼에 따라 모든 방문자를 대상으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진행한다. 또한, 로비와 레스토랑 부대시설에는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객실을 포함한 호텔 전 시설 및 집기를 매일 소독한다. 전 직원의 감염 질환에 대한 교육 및 건강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특히 객실을 담당하는 전 직원은 손 소독과 건강 상태를 철저히 확인한다. 레스토랑에서는 사용 후 즉시 테이블과 의자를 살균 소독하며, 애피타이저 및 찬 류를 개인 별로 제공한다고 한다. 체크인할 때, 방역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는 직원의 모습에서 호텔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하는 항아리처럼…
디럭스 양실에 짐을 풀었다. 규모는 18평으로 여느 호텔에 비해 넓고, 오래된 체리 원목이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유무선 무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어서 가져온 블루투스에 연결해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는 웰컴 후르츠와 하이네캔 캔맥주, 스낵이 무료로 제공돼서, 푸릇하게 올라온 잔디와 돌담이 펼쳐진 테라스에 앉아 시원하게 캔맥주 한 모금으로 여유를 느낀다.
룸서비스는 18:00~24:00까지 가능하고, 유아용 범퍼침대와 베이비 베드는 사전 예약에 한해서 선착순으로 대여해준다. 그밖에 유모차, 가습기, 제습기, 선풍기, 빨래 건조대, 다리미&다리미판, 휠체어, 블루투스 스피커는 예약 없이 선착순으로 대여할 수 있다.
잠시 여독을 풀고 포도호텔의 내, 외부 디자인 및 건축의 미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에 참관하고자 했다. 그러나, 팬데믹을 가져온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운영을 하지 않고 있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사실, 건축에 관심이 많지는 않지만,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물은 그 대지와 같이 숨을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에 대한 단면이라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미술은 좋아하지 않지만, 오롯이 휴식하며 자연과 예술만을 만나라는 호텔의 메시지에 갤러리로 내려가서 전시회를 관람했다.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한다. 지금은 곽정명 작가의 ‘고요의 설렘, 그리고 회상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6월 17일까지 전시하고 있다.
전시회의 부드러운 내공 때문일까! 차분한 마음으로 객실에 들어가 다시 테라스에 앉는다. 나도 모르게 감성을 따라 자동으로 몸이 이끌렸다. 순간, 이래서였을까! 그림의 미덕은 해가 뉘였해지기 시작하는 즈음에 황홀한 감성을 보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의 목록에 있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Marc Anthony의 ‘When I Dream At Night’을 시작으로, 해 질 녘 분위기와 너무나 환상적이었지! 포도 호텔이 주는 첫 번째 선물이었다.
절정에 이르는 석양에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행복하면서도 가슴이 저리는 느낌만이 침묵으로 다가왔다.
저녁 식사를 하고, 청량한 밤공기를 흠뻑 들이키며 약 30 여 분 정도 가볍게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객실로 들어왔다. 몸을 휘감은 청량한 공기는 침대 위에 살포시 눕혀놓고, 국내 유일의 아라고나이트 온천을 즐겼다. 아쉬운 점은 한실에서는 기소 히노끼 욕조를 이용하는데, 양실에서는 대리석 욕조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결 부드러워진 촉감으로 청량한 공기 옆에 누워 질적인 숙면을 할 수 있었다.
아라고나이트 고온천은 수 억년 전 생성됐고, 300만 년 전에 모양을 갖춘 지하 화강암 위에 백오십 년 전 순수한 물이 심도 2001.3m로 서서히 유입되어 각종 미네랄을 함유하면서 생성됐다. 토출 온도는 약 42℃로 국내 온천에서 토출 되는 대부분의 온도인 25~34℃와 차별화되는 고온 온천수로 분류된다. 이것은 당 현종과 양귀비가 목욕을 즐긴 서안 온천과 성분이 유사하다. 숙성 과정에서 투명한 맑은 물이 변화되어 만들어낸 독특한 우유 빛깔의 아라고나이트 고온천수는 약 알칼리성으로 무난하고 감촉이 깨끗하며, 특히 칼슘이나 이산화탄소를 풍부하게 녹여내고 있다. 목욕 뒤에는 한기가 적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서 각종 질병 예방 및 치유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것은 세계 최고의 지질학자인 기타가와 다가시, 마쓰모도 유끼오 두 사람에게 의뢰해 분석한 결과다.
성분은 나트륨(수분 균형, 혈압, 근육 신경조절), 칼슘(골격형성, 신경발달), 마그네슘(골다공증 예방, 신경, 결석 예방), 칼륨(신경계, 혈압 저하, 혈당 조절), 실리카(피부, 동맥의 탄력성, 노화방지), 철(면역, 약물의 해독), 망간(혈당조절, 류마티스 관절염), 당뇨, 아연(산소 반응, 알코올 분해, 생식기능 향상), 게르마늄(세포에 산소공급, 통증제거, 면역), 스트론티윰(생리작용, 효소 활성화), 붕소(뇌기능 발달), 염소(소화촉진, 삼투압 조절), 유황(피부 탄력)이 함유돼있다.
꿈에서 아라고나이트 고온천에 대해 공부를 하며, 여명에 상쾌한 기운으로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는 포도호텔 내에 있는 포도 올레코스를 조깅했다. 벗 삼아 함께 뛴 핀크스 골프클럽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조경이었으며, 그 모습에 시선을 뗄 수가 없어 지치지 않는 체력이었다.
조깅으로 땀 흘리고, 찬물로 샤워한 후에 시원한 컨디션으로 먹는 아침 식사는 보약이었다. 식사 전에 제공되는 후레쉬 주스(당근 또는 토마토)는 상쾌한 기분을 극대화시켜주었고, 신선한 계절 샐러드에 온천 수란, 생선구이, 기본찬 5가지와 미역국은 정갈한 입맛을 내주었다.
레스토랑 입구(左)와 로비(下)에 있던 고가구, 그리고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에 이타미 준의 대표작으로 포도호텔을 선보이며 프랑스로부터 받은 문화훈장(上) ‘슈발리에’다. 아쉽게도 고가구들의 원래 주인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내년에도 봄이 피면 그 너머로 포도는 더욱 성숙하게 영글어 있겠지! 20살, 성년이 되는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포도호텔의 메시지, 오롯이 쉬라 하네…!
점심시간에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 ‘왕새우튀김 우동 정식’을 먹었다. 나에게 포도호텔 소식이 처음으로 들려온 것은 다른 게 아닌 바로 이 요리였다. 수년 전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크나큰 칭찬을 전해 들으며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설레는 마음으로 하지만, 우동에게 나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기고만장해서 혹시나 본연의 임무를 안 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러나 기우였다. 국물을 먼저 한 모금 마시는데, 육수의 깊이가 느껴지면서도 무언가 절제되는 맛이었다. 면발은 굉장히 부드럽지만, 면에 잘 배어진 육수의 맛이 결코 부드럽게만 가만히 놓아두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말했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겉바속촉)한 30cm의 왕새우튀김 먹으면 놀라지 말라고… 시중에서 맛있게 먹던 새우튀김과 다른 것은 기름기가 거의 없어서 튀김 맛을 오롯이 음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육수와 면발 그리고, 왕새우튀김이 절묘한 삼박자로 하모니를 이루며 수년 전의 그 지인이 떠올랐다. ‘고마워’… 포도호텔이 건네준 두 번째 선물이다.
진심으로 건강한 휴식이 몸에 배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호텔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 했던 생각에 스스로 칭찬을 해준다. 그렇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기분으로 체크아웃을 하고 문을 나서는데 직원분이 포도호텔에서의 세 번째 선물을 주셨다. 다음에 찾을 기회가 되면 한실에 꼭 머물러보라 하면서 어느 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곳을 자주 애용하는 어느 노인분이 계시는데, 미리 일기예보를 보고 비 내리는 날만 골라서 꼭 한실을 예약하신단다. 테라스로 나가 마루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보며 옛 추억을 회상하고 감회에 젖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서 그 노인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나의 지나온 길도 되돌아보고 있었다. 포도 넝쿨이 준 세 번째 선물에 기쁨이 충만하고, 청량한 공기로 싸매서 보자기에 잘 간직해야지…
심흥섭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