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어머니가 고등어 굽던 날, 강성위

어머니가 고등어 굽던 날



강성위



어머니가 고등어 굽던 날



할아버지 친구분께서


느닷없이 찾아오셨다



온 집안이 고등어 냄새뿐이어도


그날 난 겨우


지우개만한 고등어 토막을 먹었다


너무 작아 눈물 흘리며 먹었다



[태헌의 한역]


母親燒炙鯖魚日(모친소자청어일)



母親燒炙鯖魚日(모친소자청어일)


祖父友人忽來宿(조부우인홀래숙)


全家遍滿熏魚香(전가편만훈어향)


愚生僅食如棗肉(우생근식여조육)



[주석]


* 母親(모친) : 모친, 어머니. / 燒炙(소자) : (불에 사르고) 굽다. / 鯖魚(청어) : 고등어. ‘鯖魚’는 청어(靑魚)를 뜻하기도 하고 고도어(古刀魚)를 뜻하기도 하는데, ‘古刀魚’는 고등어를 우리 식으로 표기한 한자어이다. / 日(일) : 날, ~하는 날.


祖父(조부) : 할아버지. / 友人(우인) : 친구, 벗. / 忽(홀) : 문득, 갑자기. / 來宿(내숙) : 와서 묵다, 묵으러 오다.


全家(전가) : 온 집안. / 遍滿(편만) : ~이 널리 차다, ~이 꽉 차다. 熏魚香(훈어향) : 생선 굽는 냄새.


愚生(우생) : 나. 자기(自己)를 겸손(謙遜)하게 일컫는 말이다. / 僅(근) : 겨우. / 食(식) : ~을 먹다. / 如棗肉(여조육) : 대추와 같은 고기, 대추만한 고기. ‘대추’는 원시의 ‘지우개’를 대신하여 사용해본 말이다.



[한역의 직역]


어머니가 고등어 굽던 날



어머니가 고등어 굽던 날


조부님 벗께서 문득 오시어 묵으셨다


온 집안에 생선 굽는 냄새 가득했어도


나는 겨우 대추만한 고기를 먹었을 뿐



[한역 노트]


“여름 손님은 범보다 더 무섭다.”는 말은 전기(電氣)도 없던 농경 사회에서 만들어진 말로 보인다. 아무리 시골이라 하여도 “접빈객(接賓客)”의 문화는 소중한 것이어서 손님을 정성껏 접대하자면 각오해야 할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먹는 것은 물론 입는 것과 잠자는 것에도 상당한 불편을 초래하는 이 ‘여름 손님’이 오면 집안의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은 거의 비상 상태가 되기 일쑤였다. 열무김치 하나 두고 간간한 된장찌개에 호박잎을 쌈 싸먹으며 풋고추를 곁들이기만 해도 풍족한 여름 식사지만, 손님에게까지 이런 상을 내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여름철 식사 대접은 그야말로 초비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런 일이 우리 집에서도 일어났더랬다. 집안의 왕이나 진배없는 할아버지의 친구분께서 어느 여름 다 저녁에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셨던 것이다.


당시에 우리집은 조부모님이 사시는 집과 우리 식구들이 사는 집이 달랐다. 그러나 밭 언덕 두어 층 높이 차이로 위와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 주로 식구들만 다니는 길로 연결 되어 있어 기실 한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보통 때는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각자 식사를 준비하셨다. 그날도 분명 그랬다. 예고도 없이 손님이 불쑥 마당을 들어섰을 때 할머니께서는 얼마나 놀라셨을까? 급히 어머니를 찾으실 때의 그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어머니는 마당 한 켠에서 해으름의 열기에 더해 장작불의 열기와 싸우며 고등어를 굽고 계셨다. “야야, 천만다행이다, 천만다행이다.” 이렇게 소리치며 어머니 계신 쪽으로 쫓아가던 할머니의 그 때 표정 또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변변한 찬거리가 없어 난감하기 그지없었을 할머니에게는 고등어구이가 구세주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날 그 할아버지의 방문으로 인해 역자는 역자만이 아는 슬픈 저녁을 먹어야 했다.


고등어구이조차 맘껏 먹을 수 없었던 그 시절이지만, 냉장고조차 없었던 그 시절이지만, 역자는 모든 것이 넘쳐나는 지금 이 시절과 바꿀 생각이 별로 없다. 그 시절에는 지금에는 없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국장 냄새가 싫다고 할머니를 타박하며 햄버거 사들고 들어오는 이 시대 어린 세대들에게는 훗날 무엇이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게 될까?


낙서 내지 메모에 가까운 것이기는 하지만 역자가 지은 한글 시를 역자가 한시로 옮기는 것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여도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애초에 역자가 한시로 옮길 것을 염두에 두고 한글 시를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미리 생각하거나 계산을 했더라면 원시의 제7행 “너무 작아 눈물 흘리며 먹었다”를 부언(附言)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니지만, 또 ‘짜고 치는 고스톱’인들 뭐 어떠랴! 시가 누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는 말이다. 역자는 3연 7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4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다.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宿(숙)’과 ‘肉(육)’이다.


2020. 9. 1.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