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근영의 브로커 토파보기] 브로커가 거래처 대표보다 중요한 까닭
브로커(仲介人, broker)는 ’상법’ 제93조에 따라 ‘타인간의 상행위(商行爲)를 중개’하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자를 말하며, 중개인과 ‘계약의 중개를 의뢰한 자’ 사이에는 중개계약이라는 위탁계약이 체결되며 상법에서는 위탁계약에 견품보관의무, 계약서교부의무, 장부작성의무, 개입의무 등 일정한 ‘특칙’을 정하고 있고 중개인은 계약서 교부 후 계약당사자 쌍방에게 중개료를 각기 청구할 수 있다(상법 제100조).

우리나라는 브로커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랜 기간  허위 매물이나 허위 정보로 사기를 친 중개인들이 많았으며 ‘코리아게이트’라는 창피스러운 대미(對美) 로비의 흑역사가 남긴 상처도 큰 원인중의 하나라고 본다.

1970년대 미국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 인권 문제 등으로 우리 정부와 마찰을 빚었는데, 우리 정부가 한 재미 실업가를 통해 미 의회 내 우군 확보 작업에 나섰다가 엄격한 규제를 받는 미 로비 시스템을 무시하고 ‘한국식’ 스타일로 돈만 뿌려대다 망신을 당한 사건이 ‘코리아게이트’다.

당시 미 언론으로부터 ‘세련되지 못한 공작의 표본 같다’는 조롱과 함께 웃음꺼리가 되었고, 이 때문에 아직까지 국내에선 ‘로비스트는 불법 브로커’ ‘로비는 뇌물·향응’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이렇게 국내의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미국에서 로비는 수정헌법 ‘청원권’에 근거를 둔 합법적인 세련된 비즈니스다.

기업이나 ·단체는 물론 외국 정부도 전문 로비스트를 고용해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받는다. 다만 고객과 보수, 활동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이른바 ‘K-Street’로 상징되는 워싱턴 로비 시장에는 2,500개가 넘는 브로커 회사에 2만여명의 로비스트가 등록돼 있으며 한 지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구글은 워싱턴에 15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확보하고 브로커들로 가득채워 대 정부 로비에 적극 활용 중이라고 한다.

전 세계 검색시장에서 독점적 존재인 구글은 미국의 반독점법 (반(反)트러스트(Anti-trust)법이라고도 한다)에 의한 기업 분할이나 더 강력한 법적 제재를 막기 위해 매년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데, 구글 뿐 아니라 미국의 수많은 기업들은 매년 30억달러 이상을 이 거리에 뿌린다고 한다.

이들 브로커 중 거물급은 연방 의원들을 직접 불러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막강한 로비력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 내 인맥이 취약한 외국 정부나 기업이 이들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반면에 브로커 중에는 아프리카 난민의 유럽 행을 알선하는 밀입국 브로커들과 같은 악질 브로커들도 많다. 한 조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100여개국 출신의 난민 밀입국 브로커들은 유럽 전역과 주요 밀입국 경로 250여곳 이상의 장소에 분포돼 있는데, 이들이 2015년 한 해 동안 난민들로부터 거둬들인 금액이 무려 약 50억에서 6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하니 유럽에 들어온 난민 90%가 밀입국 브로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사업을 하던 개인 사정이던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 다양한 분야에서 중개인이나 중개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으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다 보면 자연스레 전문 중개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연결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브로커가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투자를 유치하거나 신제품의 판매를 위한 새로운 판로 개척을 위해 의도적으로 인맥이 넓거나 관련업무에 밝은 브로커를 찾는 경우도 많다.

거기에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거나 유명 인플루언서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브로커와 관계를 맺게 될 경우 반드시 사전에 명확한 선을 긋고 거래를 해야 문제가 없다.

내 경험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컨설팅이나 브로커리지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 역시 젊었을 때는 그런 실수를 여러 번 저질렀는데, 명망 있는 분들의 전화 한 통이 주는 효과는 상상 이상이며, 그들은 그 전화 한 통을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의뢰자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세상에 절대로 공짜가 없다.

내가 저 사람에게 한번 부탁을 했다면, 나도 언젠가 저 사람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기에 당신을 위해 브로커가 누군가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은 후일 그만한 대가를 반드시 치른다는 의미다.

따라서 무언가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중개를 의뢰할 때는 명확하게 보상에 대한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을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또한 중개인을 활용할 때 가장 안 좋은 케이스는 부탁을 하면서 그에 상응한 보상 대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태도다.

두루뭉실하게 부탁을 하고 일이 성사된 후에 내가 언제 그런 보상을 얘기했느냐 하는 오리발을 내밀 생각에 두루뭉실 부탁을 하는 사람도 가끔 본다.

하지만 이런 경우 백이면 백 두고두고 욕 먹는 것은 물론, 자칫 어렵게 성사된 그 일 자체가 중개인의 훼방으로 원천 취소되는 경우도 있고, 역으로 의뢰자에게 피해가 올 수도 있다.

또한 무엇보다 절대로 해서는 안될 행동은 중개인을 배제하는 행위다.

원하는 사람 소개받고, 이제는 상대방과 인사를 나눴으니 이제 당신 역할은 끝났다는 듯이 중개인을 제쳐놓고 직접 거래를 하려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이것보다 멍청한 짓은 없다.

이런 사람은 열이면 열 모두 실패하는 것을 많이 봤으며 설사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일이 제대로 풀리는 것을 본적이 없다.

이런 경우 대부분 중개인과 거래 상대방과의 신뢰도를 과소 평가한 경우가 많은데, 생각보다 거래 상대방은 중개인과 깊은 관계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중개인 배제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행동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자신의 명성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길 수도 있다.

뒤통수를 맞은 중개인에 의해 믿을 수 없는 사람, 믿을 수 없는 기업으로 낙인이 찍히면 아예 자신의 사업 자체가 실패할 수도 있다고 본다.

참고로 브로커(중개인)를 아주 잘 활용하는 사람의 사례를 하나 들어본다.

필자의 지인 한 사람은 도심에 작은 건물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의례적으로 건물 주변의 부동산 중개소를 순방하며 빵이나 커피, 또는 점심을 대접하는 것이 주 업무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가 중개소를 방문하면 모두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중개비를 후하게 쳐준다.

그러다 보니 중개인들은 다른 건물과 동시에 빈 상가가 나왔을 때 지인의 건물을 우선 소개하며 적극 임차인을 찾아 준다.

한두 달 가게가 비어 세를 못 받는 경우가 생길 것을 감안하면 평소의 밥값이나 수수료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브로커의 가치를 알고, 중개인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종국에는 큰 실리도 챙기고 사업에도 성공한다.



신근영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