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경 칼럼] 맞지 않는 옷, 먹고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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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이 먹고사는 이야기로 넘쳐난다.
먹고 살기!
사는 게 뭔지! 푸념도 하루 이틀이다.
며칠 전 가족 같은 동생들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아프고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한 숙연함으로 한 동안 머물렀다.
사는 게 뭔지!
늘 말이 없이 엷은 미소로 삶을 관조하며, 자기 속상한 것은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속으로 삭이는 동생, 생각이 깊고 이타심이 강한 보석 같은 동생, 단단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은 이러한 자신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붙잡고 있어서 그 아픔이 극심했을 것을 알기에 동생의 아픔은 내 가슴도 아리게했다.
수년을 알고 지내 온 동생의 성품에서 툭 튀어나온 “점쟁이를 찾아 가 볼까 했어요”라는 말은 그 자체로 아픔이었다.
구안괘사(얼굴 신경 마비 증상, 입과 눈이 한쪽으로 틀어지는 병)에 중풍 뇌졸중(반신불수) 증상까지 있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니 이 모든 증상의 원인이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초기에는 진급도 잘 되고 이사직까지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다 싶더니 마음고생도 그만큼 극심했던 터였다.
누나로서 이 지경까지 된 동생에게 죄스런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말 나온 김에 사주 좀 보자고 했고 펼친 동생의 삶은 ….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그 힘겨운 삶을 성실함과 뚝심으로 버텨왔음을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속이 상했다.
지금에 와서 이미 경험해버린 아픈 삶을 돌이킬 수 없으니 그저 아타까울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빨리 벗고 아직 젊고 힘과 지략이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즐겁게 훨훨 날아라 조언했다.
한결 밝아진 동생의 모습에 나도 마음이 놓였다.
사는 게 뭘까?
사람이 자기 삶의 현재의 원인과 미래의 희망을 알 수 있다면 지금의 그 길에서 내려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어리석어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고, 알고 있는 것만 고집하는 습관이 있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고 현명한 선택이라 믿고 조언한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확실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는 다른 일을 선택해서 경험하게 될 위험을 감수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힘들고 괴롭지만 잘 알고 이미 경험되어져 그래도 위험부담이 적다고 생각되는 ‘지금까지 살아온 길 그냥 가기’를 선택한다. ‘안전의 욕구’다.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개인의 삶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다.
맞지 않는 옷!
동생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수십 년 가족을 위한 ‘먹고 살기’에 최선을 다했다.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져 내리는 것도 감수한 채,
이런 경우는 자신은 물론 주위에 차고 넘치게 많다.
부모님의 면을 세우기 위해, 명예 때문에, 타인의 시선 때문에, 사회적 인식 때문에, 배운 것이 아까워서,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뿐이어서, 여태 해 왔던 일이니까,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왜 그럴까?
모든 결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자기도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
물론 잘 알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기를 잘 모른다.
안다고 하는 그것은 또 다른 모름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안다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에게 맞는 일을 선택할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어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많이 줄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쇠를 다루는 직업군에 나무를 다루어야 할 사람이 호기심으로 혹은 갈 곳이 없어서 어쩌다가 취직을 하게 되면 확연히 다른 성격으로 인해 매일의 직장생활이 지옥이 된다.
또한 천직이 예술가인 집단에 쇠를 다루어야 할 사람이 호기심으로 혹은 지인의 소개로 취직을 하게 되면 절대로 못 견딘다.
부모들은 자식의 잦은 이직을 보면서 조언한다. “제발 한 곳에 좀 꾸준히 있어라”
하지만 그것은 뭘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자식도 오죽하면 그렇게 옮겨 다닐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행동에는 많은 부분 자기가 ‘살기 위한 선택’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것 같지만 피하지 못하는 삶이 진정한 고통인것이다.
선택할 수 있을 때, 또 다른 대안을 만들 수 있을 때 빨리 자신에게 맞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제2, 3의 인생을 준비한다면 이제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 입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 행복한 삶을 위해서!
먹고 사는 것도 내가 살아 있을 때다.
오미경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먹고 살기!
사는 게 뭔지! 푸념도 하루 이틀이다.
며칠 전 가족 같은 동생들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아프고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한 숙연함으로 한 동안 머물렀다.
사는 게 뭔지!
늘 말이 없이 엷은 미소로 삶을 관조하며, 자기 속상한 것은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속으로 삭이는 동생, 생각이 깊고 이타심이 강한 보석 같은 동생, 단단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은 이러한 자신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붙잡고 있어서 그 아픔이 극심했을 것을 알기에 동생의 아픔은 내 가슴도 아리게했다.
수년을 알고 지내 온 동생의 성품에서 툭 튀어나온 “점쟁이를 찾아 가 볼까 했어요”라는 말은 그 자체로 아픔이었다.
구안괘사(얼굴 신경 마비 증상, 입과 눈이 한쪽으로 틀어지는 병)에 중풍 뇌졸중(반신불수) 증상까지 있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니 이 모든 증상의 원인이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초기에는 진급도 잘 되고 이사직까지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다 싶더니 마음고생도 그만큼 극심했던 터였다.
누나로서 이 지경까지 된 동생에게 죄스런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말 나온 김에 사주 좀 보자고 했고 펼친 동생의 삶은 ….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그 힘겨운 삶을 성실함과 뚝심으로 버텨왔음을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속이 상했다.
지금에 와서 이미 경험해버린 아픈 삶을 돌이킬 수 없으니 그저 아타까울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빨리 벗고 아직 젊고 힘과 지략이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즐겁게 훨훨 날아라 조언했다.
한결 밝아진 동생의 모습에 나도 마음이 놓였다.
사는 게 뭘까?
사람이 자기 삶의 현재의 원인과 미래의 희망을 알 수 있다면 지금의 그 길에서 내려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어리석어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고, 알고 있는 것만 고집하는 습관이 있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고 현명한 선택이라 믿고 조언한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확실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는 다른 일을 선택해서 경험하게 될 위험을 감수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힘들고 괴롭지만 잘 알고 이미 경험되어져 그래도 위험부담이 적다고 생각되는 ‘지금까지 살아온 길 그냥 가기’를 선택한다. ‘안전의 욕구’다.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개인의 삶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다.
맞지 않는 옷!
동생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수십 년 가족을 위한 ‘먹고 살기’에 최선을 다했다.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져 내리는 것도 감수한 채,
이런 경우는 자신은 물론 주위에 차고 넘치게 많다.
부모님의 면을 세우기 위해, 명예 때문에, 타인의 시선 때문에, 사회적 인식 때문에, 배운 것이 아까워서,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뿐이어서, 여태 해 왔던 일이니까,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왜 그럴까?
모든 결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자기도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
물론 잘 알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기를 잘 모른다.
안다고 하는 그것은 또 다른 모름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안다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에게 맞는 일을 선택할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어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많이 줄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쇠를 다루는 직업군에 나무를 다루어야 할 사람이 호기심으로 혹은 갈 곳이 없어서 어쩌다가 취직을 하게 되면 확연히 다른 성격으로 인해 매일의 직장생활이 지옥이 된다.
또한 천직이 예술가인 집단에 쇠를 다루어야 할 사람이 호기심으로 혹은 지인의 소개로 취직을 하게 되면 절대로 못 견딘다.
부모들은 자식의 잦은 이직을 보면서 조언한다. “제발 한 곳에 좀 꾸준히 있어라”
하지만 그것은 뭘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자식도 오죽하면 그렇게 옮겨 다닐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행동에는 많은 부분 자기가 ‘살기 위한 선택’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것 같지만 피하지 못하는 삶이 진정한 고통인것이다.
선택할 수 있을 때, 또 다른 대안을 만들 수 있을 때 빨리 자신에게 맞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제2, 3의 인생을 준비한다면 이제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 입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 행복한 삶을 위해서!
먹고 사는 것도 내가 살아 있을 때다.
오미경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