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약속, 이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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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이우걸
가을은 가을은
스님 같은 가을은
제 가진 육신마저 다 벗고 돌아서는 날
그 불길
그 부산 끝에도
사리 같은
씨앗 남겼네.
[태헌의 한역]
約束(약속)
秋也秋也與僧若(추야추야여승약)
了脫肉身離此地(요탈육신리차지)
盡經烈火忙亂後(진경열화망란후)
終遺種子如舍利(종유종자여사리)
[주석]
*約束(약속) : 약속.
秋也(추야) : 가을은. ‘也’는 강조의 뜻으로 사용한 어기사(語氣詞)이다. / 與僧若(여승약) : 스님과 같다.
了脫(요탈) : 완전하게 ~을 해탈(解脫)하다. / 肉身(육신) : 육신. / 離此地(이차지) : 이 땅을 떠나다. <가을이> 돌아선다는 의미를 역자가 임의로 바꾸어본 표현이다.
盡經(진경) : ~을 다 겪다. / 烈火(열화) : 불길. / 忙亂(망란) : <바빠서> 정신이 없다, 부산하다. / 後(후) : ~한 후에.
終(종) : 마침내. 한역(漢譯)의 편의상 역자가 보충한 글자이다. / 遺種子(유종자) : 씨앗을 남기다. / 如舍利(여사리) : 사리와 같다.
[한역의 직역]
약속
가을은, 가을은 스님과도 같아
육신 다 벗고 이 땅 떠나는데
불길과 부산함 다 겪고 나서
마침내 사리 같은 씨앗 남겼네
[한역 노트]
폴란드 속담에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속담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가을의 경우 그 비유가 가을걷이가 다 끝난 뒤의 쓸쓸한 늦가을에나 어울릴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시에서 가을을 스님에 견준 것 역시 늦가을에 한정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시의 내용에 잘 부합하므로 굳이 ‘가을’ 앞에다 ‘늦은’이라는 관형어를 덧붙일 필요는 없을 듯하다.
가을은 거개의 식물들이 잎을 내려놓고 씨앗을 남기는 계절이다. 이런 식물들이 자기 존재의 징표로 남기는 씨앗이, 수도(修道)한 스님들이 다비식 후에 남기는 사리(舍利)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 시의 주지(主旨)이다. 스님들이 사리를 남기기 위해 수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리가 각고면려한 정진(精進)의 결과물로 간주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사리는 달리 스님들이 남긴 아름다운 언어나 덕행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이 시에서 얘기한 ‘그 불길’과 ‘그 부산’은 식물들이 겪어야만 하는 숱한 시련들을 함축적으로 일컬은 말이다. ‘그 불길’이 혹서(酷暑)나 한발과 같은 것이라면, ‘그 부산’은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것일 게다. 그러한 천신만고를 겪은 후에 마침내 남기게 되는 씨앗이 어찌 사리처럼 거룩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이 시의 제목을 평범하게 ‘늦가을’ 정도로 적지 않고 ‘약속’이라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식물계의 ‘약속’을 통해 인간계의 ‘약속’을 각성시키는 것이 어쩌면 시인이 의도한 궁극의 목표일 수 있다. 식물계의 씨앗은 생명을 잇는 다리이며, 그 다리를 이어주는 것은 생명체의 신성한 의무이다. 이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겠다는 것이 바로 생명체의 약속일 것이다. 그것이 자신과의 약속이었든, 신과의 약속이었든 약속이 있어 약속을 지킨 것은 분명 거룩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자식이 씨앗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자녀를 반듯하게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약속’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우리가 인생을 살며 지켜야 할 약속의 전부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무슨 약속을 지켜 우리 인생의 씨앗으로 남겨야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답을 찾아가며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존재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각 분야의 지도자들 가운데 자신이나 세상과의 약속을, 나무가 내려놓은 나뭇잎보다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말이나 글이 아무리 찰지고 아름답다 하여도 그들의 행동과 삶이 사람들에게 교본(敎本)이 되지 못한다면, 그 많은 말이며 글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미세먼지처럼 공허하게 세상을 떠돌다 사람들에게 아픔이나 주지 않겠는가!
역자는 연 구분 없이 7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칠언 4구의 고시(古詩)로 재구성하였다. 이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地(지)’와 ‘利(리)’이다.
2020. 11. 24.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