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기 칼럼] 어려운 고비마다 만난 은인들
중학교는 한국 최북단, 38선 너머, 임진강 건너, 연천 백학이었다. 중학교도 없던 시절,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마침 중학교가 생겼다. 인적이 드문 마을로 부임해 오신 교감선생님께서, “이 다음에 커서 선생님 하면 좋겠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20년간 직장생활을 한 후, 16년 째 대학과 기업체에 강의를 하고 있다.

공고를 다닐 때, 영어선생님은 “참 발음이 좋구나.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 하니?”라고 칭찬하시면서 영어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그땐 내가 영어를 진짜로 잘 하는줄 알았다. 그 때부터 영어가 싫지 않고 어렵지 않았다. 강의를 하면서 3권을 번역하고, 네팔, 인도네시아, 몽골, 미얀마 등 9개국 공직자와 선생님들에게 강의를 했다. 5년 전, 모교에 가서 교감선생님이 되신 그 분께 인사를 드리고 강의를 했다.

기아자동차 직업훈련소에서 용접, 밀링, 선반(旋盤) 등의 기술을 배울 때, 기술을 가르쳐 준 선생님 한 분께서 이론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며,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셨다. 그 때 반복해서 여러 번 읽은 책이, “공작기계(工作機械)와 품질관리였다. 그 때,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입사한 회사 전산실에서 근무하다가 갑자기 인사과로 발령이 났다.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부사장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인사과 직원은 알아야 할 법령이 많았다.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남녀고용평등법, 사내근로복지기금법, 국가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장애인고용촉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알아야 했다. 그래서 대학원을 갔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 김 부사장에게 고된 훈련을 받았다. “영어 공부 해라. TOIEC 점수가 몇 점이냐? 신문 읽어라.” 그 분의 도움 덕분에 뉴욕보험대학에 연수를 다녀오게 되었다.

회사를 나와서 방황을 할 때, 한국경제신문사에 계신 권 기자님을 알게 되었다. 그 분께서 쓴 책과 글을 읽으며, 소소한 글과 작은 칼럼 쓰는 걸 배웠다. 15년 동안 한국경제신문 인터넷에 200여 편의 글을 쓰고, 가끔 다른 신문에도 기고를 하고 있다.

한국강사협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만난 분들 중에 여러 강사님들로부터 강의기법을 배우고, 교육담당자들로부터 강사가 알아야 할 영업방법과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곳곳에서 만난 분들 중에 “원수 같은 놈”도 있었지만, 가는 곳마다 도움을 준 분들이 있었다. 아직도 그 은혜를 갚지는 못하고, 마음의 빚도 갚지 못했지만,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잊지 않을 것이다.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홍석기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