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시] ‘닥터 지바고’ 소설과 영화를 그대로 압축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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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눈보라가 휘몰아쳤지.
세상 끝에서 끝까지 휩쓸었지.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여름날 날벌레 떼가
날개 치며 불꽃으로 달려들듯
밖에서는 눈송이들이 창을 두드리며
날아들고 있었네.
눈보라는 유리창 위에
둥근 원과 화살들을 만들었고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 비친 천장에는
일그러진 그림자들
엇갈린 팔과 엇갈린 다리처럼
운명이 얽혔네.
그리고 장화 두 짝
바닥에 투둑 떨어지고
촛농이 눈물 되어 촛대서
옷 위로 방울져 떨어졌네.
그리고 모든 것은 눈안개 속에
희뿌옇게 사라져 갔고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촛불 날리고
유혹의 불꽃은
천사처럼 두 날개를 치켜올렸지.
십자가 형상으로.
눈보라는 2월 내내 휘몰아쳤지.
그리고 쉬임없이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닥터 지바고’를 그대로 압축해놓은 듯하다. ‘겨울밤’의 배경은 암흑 속의 러시아 혁명기, ‘눈보라’는 시베리아까지 휘몰아친 혁명의 소용돌이, ‘촛불’은 시대의 광풍 앞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개인의 삶을 상징한다.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엇갈리는 ‘운명의 그림자’는 소설 주인공 유리와 라라를 닮았다.
비운의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삶도 그랬다. 그의 본업은 소설가라기보다는 시인이었다. ‘닥터 지바고’는 그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혁명기 젊은이의 방황과 고독, 사랑을 서사적으로 그린 이 소설로 그는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지만 소련 당국의 압박으로 수상을 거부해야 했다.
그는 전형적인 예술가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톨스토이의 ‘부활’ 등 소설에 삽화를 그린 유명 화가,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어릴 때 음악가를 지망한 그는 철학으로 방향을 틀어 모스크바대를 졸업하고 독일 마르부르크대로 유학했다. 철학을 공부하러 간 그곳에서 시인 릴케를 만나 오래 교류했다. 나중에는 자전소설 ‘안전통행증’을 릴케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귀국한 뒤 촉망받는 순수 예술파 시인으로 성장했지만 혁명정부 눈에는 달갑게 보이지 않았다. 1933~1943년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거리가 있어 출판하지도 못했다.
대숙청 기간에 그나마 살아남은 것은 스탈린 고향인 조지아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한 덕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와중에 셰익스피어와 괴테, 베를렌, 릴케 등의 작품을 번역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1956년 월간지에 소설 ‘닥터 지바고’를 투고했으나 ‘혁명과 그 주역인 인민, 소련 사회건설을 중상했다’는 혹평과 함께 퇴짜를 맞았다. 원고는 이듬해 이탈리아 출판사를 통해 유럽에 알려졌다.
영역본이 출간된 1958년에는 18개국어로 번역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고 마침내 노벨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소련 정부와 작가동맹의 압력으로 끝내 상을 거부해야 했다. 사후 27년 만인 1987년에야 그는 복권됐고, 노벨상은 아들이 대신 받았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눈보라가 휘몰아쳤지.
세상 끝에서 끝까지 휩쓸었지.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여름날 날벌레 떼가
날개 치며 불꽃으로 달려들듯
밖에서는 눈송이들이 창을 두드리며
날아들고 있었네.
눈보라는 유리창 위에
둥근 원과 화살들을 만들었고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 비친 천장에는
일그러진 그림자들
엇갈린 팔과 엇갈린 다리처럼
운명이 얽혔네.
그리고 장화 두 짝
바닥에 투둑 떨어지고
촛농이 눈물 되어 촛대서
옷 위로 방울져 떨어졌네.
그리고 모든 것은 눈안개 속에
희뿌옇게 사라져 갔고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촛불 날리고
유혹의 불꽃은
천사처럼 두 날개를 치켜올렸지.
십자가 형상으로.
눈보라는 2월 내내 휘몰아쳤지.
그리고 쉬임없이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닥터 지바고’를 그대로 압축해놓은 듯하다. ‘겨울밤’의 배경은 암흑 속의 러시아 혁명기, ‘눈보라’는 시베리아까지 휘몰아친 혁명의 소용돌이, ‘촛불’은 시대의 광풍 앞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개인의 삶을 상징한다.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엇갈리는 ‘운명의 그림자’는 소설 주인공 유리와 라라를 닮았다.
비운의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삶도 그랬다. 그의 본업은 소설가라기보다는 시인이었다. ‘닥터 지바고’는 그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혁명기 젊은이의 방황과 고독, 사랑을 서사적으로 그린 이 소설로 그는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지만 소련 당국의 압박으로 수상을 거부해야 했다.
그는 전형적인 예술가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톨스토이의 ‘부활’ 등 소설에 삽화를 그린 유명 화가,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어릴 때 음악가를 지망한 그는 철학으로 방향을 틀어 모스크바대를 졸업하고 독일 마르부르크대로 유학했다. 철학을 공부하러 간 그곳에서 시인 릴케를 만나 오래 교류했다. 나중에는 자전소설 ‘안전통행증’을 릴케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귀국한 뒤 촉망받는 순수 예술파 시인으로 성장했지만 혁명정부 눈에는 달갑게 보이지 않았다. 1933~1943년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거리가 있어 출판하지도 못했다.
대숙청 기간에 그나마 살아남은 것은 스탈린 고향인 조지아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한 덕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와중에 셰익스피어와 괴테, 베를렌, 릴케 등의 작품을 번역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1956년 월간지에 소설 ‘닥터 지바고’를 투고했으나 ‘혁명과 그 주역인 인민, 소련 사회건설을 중상했다’는 혹평과 함께 퇴짜를 맞았다. 원고는 이듬해 이탈리아 출판사를 통해 유럽에 알려졌다.
영역본이 출간된 1958년에는 18개국어로 번역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고 마침내 노벨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소련 정부와 작가동맹의 압력으로 끝내 상을 거부해야 했다. 사후 27년 만인 1987년에야 그는 복권됐고, 노벨상은 아들이 대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