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부는 '기/승/전/봉제자동화'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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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텍스 Expo 참관記 <2>
이튿날, 06시 10분. 너무 이른 시간인가, 호텔 레스토랑이 조용하다. 어젯밤 여행자거리로 나갔던 일행들은 07시로 정한 모닝콜을 받고서야 레스토랑에 출몰할 것이다. 준비된 음식을 접시에 담아 깔끔하게 셋팅된 창가 식탁에 앉았다. 서빙 직원이 다가와 “커피 드시겠냐?”고 묻는다. ‘어라, 셀프가 아닌가’ 평소 즐기지 않는 커피지만 대접 받는 기분이라 그러겠노라 했다. 우아하게 조식을 즐기고 있는데 스마트폰 창에 페이스북 메신저가 도착했다.“호치민에 온 걸로 알고 있는데 오늘 일정이?”
호치민에서 공장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는 오랜 지인이다. 30여년 전 업무적으로 자주 접하다가 해외로 나가 한동안 소식이 뜸했기에 더없이 반갑다. 오늘 저녁 호텔 로비로 찾아오겠단다. 전시 둘째날, 오는 11월 14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봉제기계 및 섬유산업 전시회(GT Korea 2018) 참가업체 유치를 위한 미팅이 이곳 한국관에 마련된 GT Korea 홍보 부스에서 진행됐다. GT Korea의 중국 에이전트社인 ‘RITEX’의 Emily Yao 총경리로부터 중국 기기업체 접촉 내용을 비롯 참가유치 성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Emily Yao 총경리는 “다수 중국 메이커들이 ‘GT Korea 2018’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접촉 결과 이미 한국판매대리점을 통해 참가신청을 한 곳도 더러 있지만 다른 많은 메이커를 접촉 중이며 오는 8월초까지 중국 기기메이커의 참가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전시장 내에서 낯익은 한국 봉제기기 관계자들과 현지에 진출한 봉제공장 관계자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베트남 봉제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들의 관심은 봉제자동화에 쏠려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국 봉제공장 관계자의 이야기다.
“한때 풍부한 인력에 매료되어 이곳으로 옮겨 왔지만 인력은 물론 인건비 상승 부담도 점차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에 반응이라도 하듯 이곳에 전시된 새로운 기종들은 인력절감을 위한 자동화에 맞춰진 느낌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봉제·섬유기업들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며 “봉제진출 1세대 기업들이 노동집약적인 산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생산라인 자동화를 하지 않으면 경쟁이 치열해지는 베트남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에 몰두 중인 P사 대표도 만났다. 그는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은 공장자동화 개념이다. 얼마나 더 스마트하게 함으로써 경비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꾀하느냐가 관건이다. 재단 자동화, 봉제자동화 행거시스템, 사이니지 솔루션(Signage solution)을 통해서 직원들을 교육하고 영상을 쇼룸에 비치해 바이어들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준다. 우리는 삼성 사이니지로 여기에 맞는 데이터들을 볼 수 있도록 솔루션도 만들고 관리한다. 이를 위해 삼성 사이니지 솔루션 베트남 총판을 맡고 있다”고 했다. 시장조사 차 전시장에 들렀다는 L사 개발팀장은 “매번 전시회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자동화가 필수라는 점이다. 저희가 자동화기기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중국산과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까 여러 한국 메이커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가격경쟁력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에서 싼 기계를 만들어야 되는지, 가격경쟁력을 불구하고 고퀄리티로 가야 되는 건지 헷갈린다. 중국 CISMA Show를 보면 중국 봉제기기의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자동화 속도는 엄청 빠르다. 이를 극복해야 하는 게 우리 메이커들의 고민이다”라며 자동화 기기 개발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봉제산업 관계자들의 생각은 한결같다. 기 / 승 / 전 / 봉제자동화다.
전시장에는 유수 재봉기 브랜드와 낯익은 봉제주변기기 브랜드가 대부분 눈에 띈다. 그러나 직접 출품한 곳은 몇 안된다. 대부분 베트남 판매대리점을 통해 전시되었다. 그러다보니 전시 공간에 각종 브랜드로고가 함께 붙어 있고 장비 또한 뒤섞여 있다. 새로운 기종을 선보이는 전시회라기 보다 이것저것 잔뜩 진열해 놓은 매장과도 같은 분위기다. 패브릭, 액세서리 등이 전시되어 있는 A9홀은 실내가 후텁지근하다. 천막관 실내 천장을 가로질러 설치된 천으로 만든 간이 닥트에서 찬바람이 뿜어져 나오나 뜨거운 외기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A11홀에는 효성그룹이 베트남 현지법인(Hyosung Vietnam Co., Ltd.)을 통해 스판덱스 섬유인 크레오라 에코소프트와 수영장의 염소 성분에 강한 크레오라 하이클로, 의류 착용시 발생할 수 있는 불쾌한 냄새를 없애주는 크레오라 프레쉬 등을 선보였다. 또한 사계절 내내 덥고 습한 베트남 현지 기후에 맞춰 자외선 차단, 흡습속건, 냉감 기능성을 보유한 폴리에스터 소재인 아스킨(Askin)과 나일론 소재인 아쿠아엑스 등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참관 일정을 함께하고 있는 ‘ㅇㅇ봉제’ 대표는“자동화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 살길을 찾기 위해 전시회 투어 기회를 자주 갖고 있다. 나 혼자만 봐서 될 일이 아니기에 이번엔 직원들을 동행했다. 지난번 전시(상해 CISMA)에선 200% 만족하고 돌아왔는데 이번은 200% 실망이다. 전시규모도 작은데다 우리 공장에 필요한 아이템을 찾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11월에 한국에서 열리는 ‘GT Korea 2018’이 더욱 기대된다”고도 했다. 전시관을 분주히 오가다 보니 어느새 오후 다섯시다. 일행들은 오후시간을 시내 투어로 조정해 빠져나간 터라 혼자서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반드시 비나썬(Vinasun Taxi)이나 마일린(Mailinh Taxi)이라 쓰여진 택시를 타라”는 현지가이드 Ly의 말에 따라 전시장을 나와 택시 승차장에 줄을 섰다. 믿을 수 없는 택시를 타게 되면 곤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하나, 길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미터기 금액을 올리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가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정코스로 호텔까지 주행하면 대략 12만동 나올거라 했다. 택시기사에게 호텔 명함과 함께 15만동을 보여주며 “오케이?”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뱅뱅 돌 것 같은 불안감 없이 차라리 이런 방법이 좋다는 가이드 Ly의 알짜팁을 준수한 것이다. 퇴근길 러시아워에 좀비처럼 몰고 들어오는 오토바이를 잘도 피해가며 30분 만에 호텔 앞에 데려다 주었다. 숙소에 들어서니 티비 화면에 내 이름이 적힌 메시지가 떠 있다.
호텔 밖에서 귀중품을 잘 지키란 당부다. 가방은 어깨에 메고 도로를 걸을 때 휴대전화나 카메라를 잘 챙기란다. 오토바이 날치기가 심하다더니 호텔측에서도 이런 식으로 고객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나보다. 막간을 이용해 전시장에서 만난 분들과 교환한 명함을 리멤버 앱으로 정리한 후 지인과 만나기로 한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참으로 오랜만의 해후다. 호치민의 유명 한식당 ‘아리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봉제기기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공장컨설팅으로 사업볼룸을 키웠다. 나름 교민사회에 일정 역할을 하게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그에게서 들었다.
이국에서의 사업을 꾸려간다는 게 결코 녹록치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때로는 맨땅에 헤딩하듯 무모해 보이기도 하다. 벼랑끝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그의 용기가 존경스럽다. 일정 3일차다. 오늘은 구찌 쇼핑(?)이다. 오해마시라. 명품 구찌(Gucci)가 아니라 월남전 땅굴인 구찌(Cu Chi)터널 체험이다. 체크아웃을 마친 일행은 09시 30분, 버스에 올라 구찌터널로 향했다. 차량 정체가 극심하다. 도로변 나무그늘에 해먹을 줄지어 걸어놓은 쉼터가 이색적이다. 지나가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세워놓고 한숨 자고 가는, 일종의 졸음쉼터인 모양이다. 호치민의 젖줄이라는 사이공강도, 실개천도 한결같이 탁한 흙탕물이다. 두시간여를 달려 고무나무가 즐비한 지역을 지나 버스는 구찌터널 주차장에 멈춰섰다.
월남전 당시 미군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지하 터널이다. 잔혹하고도 열악했던 게릴라전의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 주는 터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설명을 들어보니 구찌터널은 그야말로 과학이다. 치밀한 계산과 사소함도 놓치지 않은 설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이어 봉제품(의류, 가방, 신발 등) 짝퉁시장인 ‘사이공스퀘어’를 둘러본 후 사이공강 선상 위에서 호치민의 밤풍경을 만끽하며 맥주를 곁들인 만찬을 끝으로 공항으로 이동, 호치민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