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가 중국 광저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제조 공장 승인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중국 정부가 공장 건설 승인 조건으로 OLED 기술 이전을 요구했다는 악성루머가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는 7조4000억 원을 투자해 광저우에 8.5세대(2250㎜×2500㎜) TV용 OLED 패널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내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상황이 녹록치 않다. 우리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계획보다 3개월 정도 착공이 늦어진데다 올해 1분기 적자로 고전 중이데 주가까지 하락하면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4일 디스플레이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공장 승인 조건으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OLED 제조 기술이전, OLED 연구개발센터 건립, 부품·소재 현지 조달이 그것이다.

OLED 기술을 통째로 넘기라는 중국의 태도는 ‘매몰비용(sunk cost)’을 활용한 전형적인 압박형 협상전술이다. 공사를 시작한 지난해 8월 이후 이미 수천억 원을 투입한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서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을 무엇보다 중국이 잘 알기 때문이다. 매몰비용은 경제학에서 주로 사용되며 그 의미는 ‘사람들은 이미 지불된 비용이나 노력, 시간이 있기에 그것이 아까워서라도 본전을 뽑으려고 한다’는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패턴에서 나타난다.

지난 5월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이 6월 12일 예정됐던 북·미정상 회담을 전격 취소한 것도 매몰비용을 이용한 협상전술이다. 지난 4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5월 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의견을 교환했고, 5월 24일 전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작업을 했다. 이후 2시간여 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주도적 노력이라고 강조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진 김정은 위원장은 5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이후 트럼프의 발언, “문 여전히 열려있어.” 앞으로 진행될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는 미국의 의도대로 북한은 끌려다닐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압박이나 협상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매몰비용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음의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균형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균형적인 시각을 잃고 수많은 기회를 발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현재 가진 상황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방법이나 대안이 무엇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주식투자에서도 잘 아는 종목에만 투자하다 보면 언제나 비슷한 결론만 도출한다. 때로는 시야를 넗혀 다른 종목에도 투자할 수 있는 식견을 가져야 한다.

둘째, ‘아니다.’라고 판단이 든다면 빨리 다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매몰비용의 함정은 어떤 프로젝트가 더 이상 매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프로젝트에 이미 투자한 비용 때문에 계속 진행하는 잘못을 범한다. 이는 이미 낸 돈이 아까워 상한 음식일 지라도 계속 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롯데마트가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2007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지 11년 만에 사실상 사업을 접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롯데 측은 이로 인한 마트 사업 피해가 1조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선양(瀋陽) 롯데타운 건설 프로젝트 중단, 면세점 매출 감소까지 합치면 2조원의 손실을 입었다. 전략적 판단하에 최상의 목표를 정해 놓고 나머지 전술적인 부분은 상황에 따라 즉각 변화를 꿰해야 한다.

매몰비용은 예전에 자신이 했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습성, 그리고 자신의 판단 잘못으로 그 많은 자원을 낭비한 데 대한 자책감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결정이란 미래에 관한 것이다. 과거의 습성이나 자책감은 썩은 고기라고 생각하고 바로 잘라내야 한다. 그래야만 즉흥적인 새로운 변화와 생각을 덧붙일 수 있다.

셋째, 매몰비용의 포기를 자원의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가치 있는 정보에 대한 대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 사고방식도 필요하다. 더불어, 과거에 내렸던 판단을 뒤집는 것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은 “당신이 구덩이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삽질을 그만 멈추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매몰비용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당신에게 오늘의 그 일은 매몰비용의 연장선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기 바란다.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