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홍길동전”에서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홍길동전”은 지금부터 400여 년 전 조선시대의 천재 ‘허균’이 지은 소설로 그는 당대의 명문가 집안 출신으로 20대에 과거에 급제한 수재입니다.
허균과 더불어 중국이 격찬한 조선시대 천재 시인 ‘허난허설’은 그의 친누이였습니다.

명문 사대부 집안 출신이 쓴 소설로 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홍길동전”은 탐관오리의 재물을 털어 백성에게 나눠주는 의적을 주인공으로 그린 파격적인 내용입니다.

사료(史料)에 따르면 허균은 명문 사대부 출신이지만 그가 20대에 겪은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의 참혹한 실상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아, 유교 사상이 뿌리 깊은 명문가 출신임에도 불교에 심취하여 승려들과 가까이 지냈으며, 더 나아가 기생까지 집에 불러들여 함께 살았다고 하니 다른 사대부 자제들은 의식적으로 그를 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재능은 낭중지추(囊中之錐)와 같이 여기저기서 예기(銳氣)를 발휘하면서 필연적으로 많은 적을 만들었고 그를 미워하는 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 파직, 복직을 반복하다가 결국 역적모의 죄로 처형되는 극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허균은 임진왜란 7년을 통해 창과 활로 무장한 조선과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보면서 앞선 선진 문물에 대한 강렬한 갈증, 그리고 임진왜란에 통해 드러난 절망스런 조선의 현실, 그리고 끔찍한 전쟁의 폐해를 겪으며 현실 사회에 대한 차가운 비판을 아끼지 않았고 그러한 비판은 파격적인 삶의 궤적으로 나타났으며 결국 “홍길동전”이라는 소설로 그의 내면을 일부나마 표출해 냅니다.

소설에서 홍길동은 서자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양반집 자제에 비범한 능력까지 지녔음에도 과거를 볼 수 없었고,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꿈을 이뤄볼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그의 탁월한 재능을 미워하는 주변 사람들, 특히 그를 죽이기까지 하려는 집안사람들로 인해 도망치듯 집을 나와 떠돌이 신세가 됩니다.

가출한 홍길동은 분노를 품고 도적이 되었지만 탐관오리를 털어 불쌍한 서민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그의 처지가 반영된 이상적인 국가를 향한 꿈을 도적질로 승화시켜 나갑니다.

이렇게 홍길동은 도적이지만 의로운 도적이 되어 활빈당을 결성하고 의적 활동을 합니다. 그는 사회적 모순 때문에 고통받는 조선의 백성들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소설에서 홍길동은 사로잡혀 임금에게 재판을 받는데 그는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식을 품어주는 게 아비의 도리이며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게 임금의 의무인데, 백성을 괴롭히고 수탈하는 탐관오리의 재물을 털어 백성에게 나눠준 것은 임금이 할 일을 대신한 죄 밖에 없을 뿐, 선량한 백성을 잘 보호하고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임금과 대신들의 잘못이 더 큰 게 아니냐?”라고 항변합니다.

이렇게 우린 홍길동전을 통해 허균이 꿈꾼 ‘이상 국가’의 모습을 일부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시대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르는 당연한 사실이 서자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허균이 새로운 나라를 꿈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다른 이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나라, 억압과 차별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 재능 있는 자라면 적자던 서자던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아비를 아비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이루고 싶은 꿈에 허균은 “홍길동전”을 집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뜬금없이 “홍길동전”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저희 “한국 블록체인 스타트업 협회”의 회원사는 150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협회 홈페이지에는 회원사 명단에 회사 홈페이지와 대표이사 이름은 물론 연락처 등을 자랑하듯 빼곡하게 늘어놓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런데 저희 협회 홈페이지에는 회원사 명단이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몇몇 회원사들이 자신들의 회사명 등 제반 정보의 공개를 공식적으로 노출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블록체인 암호화폐 사업을 한다고 하면, 은행에서는 계좌도 오픈해 주지 않으며, 온갖 보이지 않는 규제로 사업추진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아무런 범법 사실도 없는 기업들이 블록체인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은행은 이들 기업의 해외 사업 관련 필요 경비 송금까지 거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명단이 공개되면 공개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협회 참여 자체와 회사 이름의 공개를 꺼리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어, 일부 회원사들의 요청에 의해 “법령이 정비되고 제도가 자리 잡을 때”까지 명단 공개를 늦추고 있는 것입니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중앙 기득권자들이 움켜쥐고 있는 중앙화된 권력과 막대한 이익을 참여자 전체에게 분배해주는 보상 체계를 기본으로 합니다. 이러한 보상 체계에 사용되는 것이 암호화폐입니다.

그래서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아 벡성들에게 나눠준 의적 “홍길동”과 블록체인이 추구하는 이상이 동일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블록체인 산업이 이토록 백안시되고 기득권자로부터 배책당하는 이유가 그들의 권리와 그들의 밥그릇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서자가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듯, “법도 없고 제도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온갖 규제로 선량한 기업가들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사업을 한다는 얘기조차 쉬쉬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회…..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



신근영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