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트레킹 제2신, 몽골 고원 초지를 걷다
8월 4일 06시 30분, 울란바토르의 아침은 섭씨 15도로 선선했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떠다닌다. 낮 기온을 검색해보니 25도를 넘지 않는다. 걷기에 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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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시, 미니버스에 올라 숙소인 라마다호텔을 나섰다. 버스로 1시간 반 이동해 테렐지 국립공원 내 엉거츠산을 걷는 일정이다. 이동 중 마트에 잠시 들렀다. 트레킹 가이드 ‘앗싸’는 딱히 살 것이 없더라도 몽골의 마트를 눈요기라도 하란다. 호텔서 마련해준 중식 도시락이 실속 있어 보여 딱히 더 챙겨 넣을 것은 없다. 일행의 합은 여덟, 마이크 없이도 설명이 가능할 만큼 단출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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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 초원 풍경에 시력이 급상승하는 기분이다. 기차 곱빼가 초원을 가로질러 달린다. 스마트폰 화면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길고도 길다. 몽골 철도는 화물 수송의 85%를 분담하고 있다. 노선은 러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남북 종단 형태다. 울란바토르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북부노선과 울란바토르에서 중국 천진에 이르는 남부노선이 화물수송 축이다. 주 화물은 석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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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석탄 매장량은 무려 1,733억 톤에 달한다. 몽골 석탄은 중국을 움직이는 에너지원의 70%를 점한다. 이렇다 보니 중국은 자국을 거쳐 제3국으로 수출되는 몽골의 석탄에 대해 운송 허가제를 시행하면서 사실상 몽골 석탄이 중국 밖으로 실려 나가지 못하도록 통제해 왔다. 한때 중국은 몽골의 석탄이 중국 천진항을 거쳐 제3국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코킹콜 수출 관세율을 25%에서 40%로 인상한 바도 있다. 몽골 종단철도에 대해서도 중국은 견제하고 러시아는 몽골 정부의 기차 정비창 건설 계획에 태클을 거는 등 비협조적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끼여 있어 타국으로 수출하고 싶어도 양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바다 없는 내륙 몽골의 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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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드넓은 초원을 쉼 없이 내달렸다. 도로 사정상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 바닥은 군데군데 깨져 있고 비포장길은 여기저기 빗물에 패여 있어 포장도로나 비포장길이나 덜컹거림은 매일반이다. 엉치뼈가 몹시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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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말 그리고 양 떼가 느릿느릿 도로를 가로질러 이동 중이다. 몽골 초원에선 이들이 상전인가 보다. 버스도 잠시 멈춰 섰다.
철길 건너 둔덕 밑 너른 초지에 이동식 가옥 게르(Ger)와 시설물들이 유난히 밀집해 있어 궁금해 ‘앗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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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담(natham)’이 끝난 모습이라고 했다. ‘나담’은 몽골어로 ‘여가, 경기’를 의미한다. 1921년 이후 몽골 민족해방과 정부 수립 기념일인 매년 7월 11일 전후해 열리는 민속축제다. 유목민에게 필수적인 생존기술인 말타기, 활쏘기, 씨름 등을 겨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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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큰거리는 엉치뼈도 달랠 겸 풍광 좋은 언덕 위에 버스를 세웠다.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송골매가 푸드득 날갯짓을 한다. 잘 훈련 받은 사냥 매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선 오가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잘 훈련 받은 모델이었다. 사진을 찍으면 매의 주인이 나타나 돈을 요구한다. 용맹함은 어디 가고 앵벌이 신세가 되어버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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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천이 둘러쳐진 돌무더기 언덕에 서서 테렐지 국립공원 내 산세를 조망하며 우리와 닮은 몽골을 떠올렸다.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는 결혼 풍습도, 아이를 낳으면 금줄을 치는 것도 우리와 흡사하다. 지금 서 있는 이곳 돌무더기 풍경도 마찬가지다.
우리네 성황당에는 神木이 서 있다. 나무 아래에는 으레 돌무더기와 오색천이 휘감겨 있다. 이곳 역시 ‘라체’라는 돌무더기에 오색천인 ‘타르초’가 펄럭인다. 왠지모를 동질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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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펀하던 초원을 벗어나 제법 근육질의 바위산이 다가서기 시작했다. 테렐지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파란 하늘과 구름, 구름 그림자가 내려앉은 초지, 그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야크와 소 그리고 양 떼들, ‘평온’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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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을 누비는 지프차의 궤적을 따라 뒤뚱거리며 나아가던 미니버스는 물웅덩이 앞에서 멈춰섰다. 더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어차피 걸으러 온 것인데 아무렴 어떤가? 좀 더 걷자. 오른쪽 구릉에선 골퍼들이 굿샷을 외친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골프투어 중인 한국분들이다. 내 눈엔 골프장의 안과 밖의 차이가 모호하다. 초원 전체가 거대한 골프장으로 보여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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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트레킹에 앞서 가이드 ‘앗싸’가 산 설명을 하는데…. “어라, 이게 아닌데…” 앗싸의 입에서 나온 산 이름은 ‘야마츠’다. 일정에 나와 있는 산 이름은 ‘엉거츠’다. 어떻게 된 건가?” 무슨 착오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일정표와 다소 차이가 있었던 것. 당황스러워하는 앗싸에게 “야마츠면 어떻고 엉거츠면 어떠냐, 괜찮다”라고 하자, 바로 등 뒤 산줄기가 엉거츠라며 야마츠에 올라 엉거츠를 조망하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고 둘러댄다. 트레킹 출발에 앞서 공부?를 해온 건 엉거츠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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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과 파란 하늘 뭉게구름이 왠지 낯익다. 윈도 XP 바탕화면을 하도 많이 본 탓이다. 골치 아픈 세상사에서 아득하게 멀어진 듯한 느낌, 온전한 자유다. 일행과 떨어져 앞서 걸었다. 자연을 오롯이 만끽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바위 봉우리에 올라 폐부를 활짝 열어 초원의 기운을 양껏 들이마셨다. 챙겨온 중식 도시락을 꺼내 일행들과 산상 오찬을 즐긴 후 타박타박 산길을 오르내리며 온갖 야생화들과 눈 맞춤 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에델바이스, 솔체꽃, 두메양귀비, 분홍바늘꽃, 제비고깔꽃 (꽃 이름은 ‘모야모’앱을 통해 확인)을 비롯해 이름모를 수종의 야생화가 수줍게 손짓했다. 특히 고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에델바이스가 초록 카펫에 눈을 흩뿌려 놓은 듯 지천이어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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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와 승마체험장으로 이동했다. 어설픈 자세로 마부와 고삐를 나눠 잡고 40여 분 말타기에 나섰다. 몸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마음은 초원을 누비는 칭기즈칸 의 기분이었다.
이어 현지 유목민이 거주하는 게르를 찾았다. 수줍은 표정의 유목민 딸이 내어준 수태차와 고체 우유를 맛보며 단출한 살림살이를 엿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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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Ger)’는 몽골의 전통가옥이다. 유목 생활을 위해 설치와 철거가 간단한 이동식이다. 겉 재질은 양털을 누벼 만든 ‘펠트’이고, 안쪽 벽은 가는 나무를 마름모 모양으로 엮어 만든다. 지붕은 큰 우산살을 펼친 것처럼 하여 가운데 버팀목을 댄다. 버팀목 앞에는 화로가 있고 그 위에는 늘 차나 우유가 담긴 용기가 올려져 있다. 몽골 사람들은 이 난로를 손상시키는 행동을 죄악이라고 생각해 난로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날카로운 물건을 놓는 행동은 절대 금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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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현지식이다. 이를 위해 앗싸는 미리 음식솜씨 좋은 유목민 게르를 사전 예약해 놓았다고 했다. 덜컹거리는 초원길을 40여 분 달려 도착했다. 야외에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고 그 옆에서 장작불에 올려진 찜통이 연신 쉬익쉬익 대며 스팀을 뿜어내고 있다. 몽골 유목민이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다는 음식인 ‘허르헉’이라고 했다. 허르헉은 양고기찜으로 감자와 당근을 썰지 않은 채 통으로 넣어 푹 삶아낸 현지 전통음식이다.
좋은 음식은 소주를 부른다. 현지인들에게 한국 돈이 통한다. 소주 한 병이 5천 원이다. 몽골의 하늘을 지붕 삼아 둘러앉아 양고기찜을 안주로 마시는 소주 맛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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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숙소는 ‘게르’다. 패키지 여행 시 게르는 통상 4인 1실로 배정하나 사정상 친구 K와 둘만 사용키로 했다. 난로를 중심으로 둥근 벽면을 따라 네 개의 침대가 놓여 있다. 널널한 편이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바깥에 공용으로 따로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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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쏟아지는 별빛을 기대하기엔 날씨가 영 아니다. 비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하늘이다. 일찌감치 불을 끄고 취침 모드에 돌입했는데 노크도 없이 2명의 여성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이쿠!” 하며, 담요를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아랑곳하지 않고서 난로 뚜껑을 열어 들고 온 장작과 불쏘시개(찢어진 골판지 조각들)로 불을 피우고 있었다. 불가마 같은 서울의 날씨를 또 한 번 떠올렸다. 이렇게 제대로 ‘避暑’를 하고 있었다.



차세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