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비밀정원에서 이중섭·김환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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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사랑한 미술관
석파정 서울미술관
'미술 덕후' 안병광 유니온제약 회장
흥선대원군 별장 품은 부암동 자락에 설립
이중섭 '황소' 등 근대회화 3000여점 소장
노송·전통가옥 어우러진 고즈넉한 풍광
"모두의 힐링공간 만들 것"
석파정 서울미술관
'미술 덕후' 안병광 유니온제약 회장
흥선대원군 별장 품은 부암동 자락에 설립
이중섭 '황소' 등 근대회화 3000여점 소장
노송·전통가옥 어우러진 고즈넉한 풍광
"모두의 힐링공간 만들 것"
서울 부암동 자락에 자리 잡은 석파정 서울미술관. 이름만 보면 국공립미술관 같지만 안병광 유니온제약 회장이 설립한 사립미술관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이었던 석파정을 낀 고즈넉한 공간은 감각적이고 개성 있는 전시로 2030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안 회장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연매출 5000억원대 의약품 유통업체 유니온약품그룹을 일으킨 입지전적인 기업가다. 동시에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미술품 컬렉터다.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등 국내 근대미술을 중심으로 3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를 미술의 길로 이끈 작품은 이중섭의 ‘황소’. 영업사원 시절인 1983년,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표구상에서 ‘황소’의 복제품을 만났다고 한다. 영업을 허탕친 그는 자신을 서글프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고 “나중에 꼭 저 그림을 원작으로 사주겠다”고 아내에게 약속했다. 그는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약 35억원에 원작을 낙찰받아 약속을 지켰다.
서울미술관은 4만9500㎡의 부지에 전시관 2개 동을 갖췄다. 사립미술관 가운데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인왕산 자락에 모과나무, 회화나무, 산수유가 조화롭게 자리 잡은 석파정은 서울미술관의 특장점이자 약점이다. 대중을 미술관으로 유인하는 동시에 미술의 감동이 희석될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워서다. 학예사들 사이에서 “가장 큰 라이벌은 석파정”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온다. 열심히 전시를 기획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줘도 미술관 밖으로 나가 석파정의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안 회장의 컬렉션이 보수적인 데 반해 서울미술관 기획전에서는 젊음이 생동한다. 2016년 8만 명이 넘게 찾았던 ‘연애의 온도’와 ‘비밀의 화원’, 지난해 코로나19에도 대박을 터트린 ‘보통의 거짓말’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진행 중인 ‘거울 속의 거울’에는 국내외 작가 19팀이 참여해 현대미술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인이 온라인에서 복제나 왜곡된 자아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담았다.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에 관객이 직접 참여해 작품을 만들어가는 다채로운 예술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류임상 학예실장의 도발적이고 트렌디한 감각과 안 회장의 무게감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시너지다.
안 회장은 미술관 설립 때부터 “미술관을 유한계층의 놀이터가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힐링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반영하듯 서울미술관은 곳곳에 대중친화적인 요소를 배치했다. 작품별로 상세하게 달려 있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작가의 의도, 미술사적 의미를 친절하게 풀어서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작품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도 서울미술관의 기획전이 갖는 특징이다. 묵직한 분위기의 회화 작품을 보여준 뒤 코너를 돌면 발칙한 설치 작품을 만난다. 류 실장은 “우리의 롤모델은 디즈니랜드”라고 소개했다. 관객이 기대한 예술적 감흥을 충족시키면서도 다채로운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는 설명이다.
안 회장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국 미술의 진수를 선보이는 전시도 이어가고 있다. 이중섭전, 운보 김기창전이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신사임당 특별전 ‘화가 신인선’을 열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안 회장이 30년간 구축한 컬렉션을 회고하는 전시를 열 예정이다. 대표 소장품인 김환기의 ‘십만개의 점 04-VI-73 #316’,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김기창의 ‘예수의 생’ 연작 30점 등이 공개된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사진=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안 회장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연매출 5000억원대 의약품 유통업체 유니온약품그룹을 일으킨 입지전적인 기업가다. 동시에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미술품 컬렉터다.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등 국내 근대미술을 중심으로 3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를 미술의 길로 이끈 작품은 이중섭의 ‘황소’. 영업사원 시절인 1983년,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표구상에서 ‘황소’의 복제품을 만났다고 한다. 영업을 허탕친 그는 자신을 서글프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고 “나중에 꼭 저 그림을 원작으로 사주겠다”고 아내에게 약속했다. 그는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약 35억원에 원작을 낙찰받아 약속을 지켰다.
서울미술관은 4만9500㎡의 부지에 전시관 2개 동을 갖췄다. 사립미술관 가운데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인왕산 자락에 모과나무, 회화나무, 산수유가 조화롭게 자리 잡은 석파정은 서울미술관의 특장점이자 약점이다. 대중을 미술관으로 유인하는 동시에 미술의 감동이 희석될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워서다. 학예사들 사이에서 “가장 큰 라이벌은 석파정”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온다. 열심히 전시를 기획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줘도 미술관 밖으로 나가 석파정의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안 회장의 컬렉션이 보수적인 데 반해 서울미술관 기획전에서는 젊음이 생동한다. 2016년 8만 명이 넘게 찾았던 ‘연애의 온도’와 ‘비밀의 화원’, 지난해 코로나19에도 대박을 터트린 ‘보통의 거짓말’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진행 중인 ‘거울 속의 거울’에는 국내외 작가 19팀이 참여해 현대미술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인이 온라인에서 복제나 왜곡된 자아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담았다.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에 관객이 직접 참여해 작품을 만들어가는 다채로운 예술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류임상 학예실장의 도발적이고 트렌디한 감각과 안 회장의 무게감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시너지다.
안 회장은 미술관 설립 때부터 “미술관을 유한계층의 놀이터가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힐링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반영하듯 서울미술관은 곳곳에 대중친화적인 요소를 배치했다. 작품별로 상세하게 달려 있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작가의 의도, 미술사적 의미를 친절하게 풀어서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작품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도 서울미술관의 기획전이 갖는 특징이다. 묵직한 분위기의 회화 작품을 보여준 뒤 코너를 돌면 발칙한 설치 작품을 만난다. 류 실장은 “우리의 롤모델은 디즈니랜드”라고 소개했다. 관객이 기대한 예술적 감흥을 충족시키면서도 다채로운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는 설명이다.
안 회장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국 미술의 진수를 선보이는 전시도 이어가고 있다. 이중섭전, 운보 김기창전이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신사임당 특별전 ‘화가 신인선’을 열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안 회장이 30년간 구축한 컬렉션을 회고하는 전시를 열 예정이다. 대표 소장품인 김환기의 ‘십만개의 점 04-VI-73 #316’,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김기창의 ‘예수의 생’ 연작 30점 등이 공개된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사진=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