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빅3’ 자산운용사가 새롭게 재편됐다. KB자산운용이 한화자산운용을 밀어내고 국내 자산운용사 순자산 규모 3위에 올랐다. 1년 사이 운용 규모를 40조원 넘게 불린 결과다. 보험 등 계열사 자금을 유치하고, 성장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확실한 색깔을 내세운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상품과 판매사를 모두 갖춘 대형 금융그룹사 중심의 독주 체제가 굳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년 새 44조원 증가… KB운용 ‘빅3’ 입성

9년 만에 바뀐 자산운용업 판도…KB, 삼성·미래에셋 이어 3위 등극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KB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와 투자일임상품의 순자산총액(AUM)은 105조197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년 새 44조8771억원 증가했다. KB자산운용의 AUM 규모는 삼성자산운용(290조465억원)과 미래에셋자산운용(139조6635억원)에 이은 3위다. 지난달까지 3위였던 한화자산운용(104조4064억원)은 이달 초 KB자산운용에 역전을 허용했다. 2012년 신한자산운용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던 한화자산운용은 약 9년 만에 자리를 내줬다.

KB자산운용의 역전 뒤에는 그룹 차원의 운용사 성장 전략이 있다. 그동안 KB금융그룹은 자산운용사 외에 각 계열사 내 운용 조직을 별도로 운영해 왔다. 지난해 이후 KB금융그룹은 운용 인력 및 자금을 KB자산운용으로 집중시켰다. 이 과정에서 KB자산운용은 작년 5월 부채연계투자전략(LDI)본부를 마련하고, 보험사 자금 및 운용 인력을 들여오는 데 집중했다. LDI본부를 통해 올 들어서만 7조원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파격적인 수수료를 기반으로 한 ETF 시장 공략 전략도 외형 성장에 기여했다. 올초 KB자산운용은 코스피200지수와 코스닥150지수 등 주요 시장대표 지수형 상품의 수수료를 업계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이 전략이 투자자들의 호응을 끌어내며 KB운용이 판매하는 ETF 순자산은 4조6000억원(지난 23일 기준)으로 작년 말 대비 1조2000억원 늘었다. 시장 점유율도 6.5%에서 8.2%로 상승했다.

이현승 KB자산운용 대표는 “운용사 간 차별화 요소가 적은 대표 지수형 ETF의 수수료는 내리고, 테마형 ETF는 다른 운용사에서 제공하지 않는 차별화된 상품으로 적정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 ‘투트랙 전략’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계열 운용사 편중 우려도

자산운용업계가 은행과 보험, 증권 등 강력한 판매 채널을 갖춘 대형사로 집중되는 상황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도 있다. 상위 4개 자산운용사가 업계 전체 AUM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2%로, 지난 3년 사이 1.3%포인트 늘었다. 계열사 자금을 끌어올 수 있고, 상품을 출시할 때 계열사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대형 운용사들의 독주 체제가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25일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의 여파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금소법과 그 시행령은 판매사와 판매 직원의 책임을 확대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만큼 결과적으로 판매사들이 불확실성이 적은 계열사 펀드 판매에 주력할 것”이라며 “사모펀드 사태 이후 판매사들이 차별화된 전략의 중소형사 상품을 팔기보다 계열사 공모주 펀드나 중국펀드 등 판매자에게 ‘안전한’ 상품에만 치중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