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금융회사에 411조원 규모의 고탄소업종 익스포저(위험노출액: 대출 및 채권·주식 투자)를 점차 줄여나갈 것을 권고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대에 금융회사가 고탄소업종 대출 등을 줄이지 못하면 기업가치 및 신용도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이 25일 발표한 ‘2021년 3월 금융안정상황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은행·보험사·증권사·운용사·연기금 등)의 9개 고탄소업종 익스포저는 지난해 말 411조원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고탄소업종 대출액과 채권·주식 투자액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2014년 말(375조원)에 비해 9.6%(36조원) 늘었다. 지난해 말 금융회사 전체 익스포저(2358조원)의 17.4%에 달하는 규모다.

한은은 직간접 탄소배출량 지표(TVF) 등을 활용해 화학 석탄발전 1차금속 등 9개 업종을 고탄소업종으로 분류했다. 한은은 “탄소중립 정책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ESG가 확산되고 있지만 금융회사의 관련 대응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이번 보고서에서 가계 및 기업 부채가 빠르게 불어나 우려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기업 부채 비율은 215.5%로 2019년 말보다 18.4%포인트 상승했다. 통계를 작성한 1975년 후 가장 높았다. 지난해 증가폭도 연간 기준으로 가장 컸다.

한국은행 "국내 금융사 ESG 대처 미흡"

한국은행이 3월 금융안정상황보고서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한은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ESG를 중시하는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골드만삭스 등은 이미 ESG 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총매출의 25% 이상을 석탄화력 생산·제조에서 벌어들이는 기업을 주식·채권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했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고탄소업종에 대한 익스포저(대출과 투자)를 점차 줄이지 않으면 국내외에서 자금조달에 차질이 발생하는 등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한은은 보고 있다.

한은이 선별한 9개 고탄소업종 중 금융회사 익스포저가 가장 큰 업종은 화학물질·제품업종(102조원)이었다. 이어 석탄발전(91조원), 철강업체 등 1차금속(59조원), 선박업체 등 기타운송장비(46조원), 금속가공(42조원), 정유업체 등 코크스·석유정제(35조원), 시멘트업체 등 비금속광물(21조원), 섬유(14조원), 금속광업(1조원) 등이 순이었다.

금융업권별 익스포저는 은행 251조원, 보험사 88조원, 저축은행·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기타금융회사 54조원, 연기금 18조원으로 집계됐다. 2014년과 비교해 은행 익스포저는 21조원 감소했다. 반면 기타금융회사·보험사·연기금은 58조원 늘었다. 비은행 금융회사의 ESG 대응이 특히 더디다는 뜻이다. 익스포저를 상품별로 보면 대출 247조원, 주식 87조원, 채권 77조원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이번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 가구는 작년 말 19만2000가구로 지난해 3월 말(8만3000가구)에 비해 두 배가량으로 늘었다. 이들 가구는 지난해 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초과하는 동시에 모든 자산을 팔아도 차입금을 상환하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가구가 보유한 금융부채는 지난해 말 76조6000억원에 이른다. 자영업자의 소득대비부채비율(LTI)도 지난해 말 238.7%로 작년 3월 말보다 42.8%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말 금융회사의 부동산 관련 대출·보증 등을 합친 부동산금융은 2279조3000억원으로 2019년 말보다 10.3%(212조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는 118.4%에 이른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