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00명당 백신 접종 건수가 미국 대비 20분의 1 수준으로 뒤처져 있으며, 한국 경제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를 것이란 경고가 나왔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작년에 코로나 방역의 모델로 꼽혔던 한국 등 일부 국가들이 결국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백신 접종이 느린 아시아가 경제회복 기회를 낭비하다’(Slow-vaccinating Asia is squandering its economic advantages)란 기사를 통해서다.

WSJ이 인용한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미국에선 인구 100명당 38회분의 백신이 배포됐다. 유럽연합(EU)의 같은 기준 배포 수량은 13회분이다. 이에 반대 중국에선 6개 미만의 백신이 배포됐다.

아시아의 선진국인 한국 등은 중국보다도 훨씬 적다. 한국과 일본 호주는 100명당 2회분 미만만 배포됐을 뿐이다.

WSJ는 특히 한국을 예로 들며 “경제적 구렁텅이(economic pitfalls)에 빠질 수 있는 사례”라고 지목했다. 백신 배포가 늦어지면서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경고다.
미국 유럽 등과 큰 차이 나는 인구 100명당 백신 접종 속도. WSJ 캡처
미국 유럽 등과 큰 차이 나는 인구 100명당 백신 접종 속도. WSJ 캡처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말과 작년 말 사이 약 1.2% 감소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선방한 셈이지만 기업들의 상품·서비스 수출이 1.2% 늘어난 데 따른 착시 효과였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민간소비는 같은 기간 6.5% 감소했다. 미국(-3.4%)보다도 나쁜 수치다.

WSJ는 “(한국 등에선) 늦어진 백신 배포 때문에 올해 하반기, 잠재적으로는 그 이후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및 여행 금지를 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증시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다. 홍콩과 마카오 보건당국이 중국 푸싱제약을 통해 공급 중인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일부에서 포장 뚜껑의 결함이 발견돼 접종을 일시 중단하자 항셍 및 마카오 지수가 급락한 게 대표적인 예다. 백신과 투자 심리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비해 접종 속도가 한참 뒤처지는 데 따라 치러야 할 향후 경제적 비용은 더 클 전망이다. 미 중앙은행(Fed)이 일시적인 물가 상승이 발생하더라도 당분간 초저금리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정책이 영원할 순 없기 때문이다. Fed가 긴축 정책으로 전환할 경우 달러 표시 부채가 많은 (아시아의) 국가들엔 추가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게 WSJ의 지적이다.

WSJ는 “아시아의 선진국에선 코로나 사망자 수가 적었던 탓에 백신 접종이 덜 시급한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백신의 제한적 수입 정책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