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기술주 or 가치주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21년 전인 2000년 3월24일은 '닷컴버블'의 절정이었습니다. 1995년 강세장이 시작된 뒤 S&P 500 지수는 그날까지 160% 올랐습니다. 그런 뒤 다음날부터 하락을 시작해 2002년 10월까지 49% 추락했었지요.

2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2.01% 급락했습니다. 다우 지수는 0.01% 하락했고, S&P 500 지수는 0.55%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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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인 23일과는 정반대로 기술주가 큰 폭의 약세를 보이고 경기민감주는 선방한 겁니다. 애플(-2.0%) 넷플릭스(-2.67%) 엔비디아(-3.27%) 등 대형 기술주가 크게 내렸고 테슬라(-4.82%) 펠로톤(-10.2%) 니오(-10.25%) 등 고평가 기술주도 폭락세를 보이면서 캐시 우드의 아크이노베이션 상장지수펀드(ETF)는 5.69% 떨어졌습니다. 특히 밈(meme) 주식들은 게임스톱 33.79%, AMC 15.38% 폭락하는 등 처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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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장 전인 이날 새벽까지만 해도 나스닥 선물은 상승세를 보였고 다우와 S&P 500 선물은 보합권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장이 시작된 뒤 '리플레이션 트레이드'가 강화되자 나스닥은 급격한 내림세를 탔고 다우 지수는 한 때 300포인트까지 올랐습니다. 전형적인 '리플레이션 트레이드'의 모습이었죠.

다만 오후 2시 이후 장 후반에 무차별적으로 매물이 나오면서 결국 나스닥은 2% 넘게 떨어지고 다우 지수까지 소폭이지만 마이너스로 마감했습니다.

사실 지난 몇 주 간 증시를 좌우했던 채권 시장은 이날 꾸준히 안정세를 보였습니다. 10년물 금리는 연 1.61% 수준으로 지난달 25일 저조했던 7년물 입찰로 폭등하기 전 수준까지 낮아졌습니다. 이날 열린 610억 달러 규모의 5년물 입찰도 응찰률이 2.36배로 지난달(2.38배)로 비슷했고, 발행 금리도 0.850%로 시장 금리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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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안정에도 기술주가 급락한 데 대해선 관측이 분분합니다. 일단 1분기 연기금 등의 리밸런싱으로 기술주가 많이 출회되는 것이란 분석이 있습니다. 리밸런싱 과정에서 경기민감주는 보유하고 기술주를 우선 매각하고 있다는 관측이지요. 오후 2시 이후 장 막판 매도물량이 출회되며 지수를 끌어내리는 현상은 벌써 6거래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채권 매수세는 증가해 금리는 안정세를 되찾을 걸 보면 리밸런싱 탓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쨌든 거의 매일 이렇게 성장주와 가치주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① 높은 밸류에이션

작년 11월까지는 기술주가 급등했습니다. 하지만 11월 백신 예방율이 90%가 넘는다는 발표가 나온 뒤 거래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이후 가치주, 경기민감주, 소형주가 약진했습니다.

이제는 경기민감주 등도 비싸졌습니다. 이는 숫자로 확인됩니다. 갭, L브랜즈, 라이브네이션 등 많은 경기민감주의 주가는 이미 작년 초 코로나 대유행 이전보다 높아졌습니다. S&P 500 주식 가운데 가치주에 투자하는 SPDR Portfolio S&P 500 Value ETF(SPYV)의 주가수익비율(PER)은 37.5배(작년 이익 기준)에 달합니다. 성장주에 투자하는 SPDR Portfolio S&P 500 Growth ETF(SPYG) 펀드는 38.7배와 맞먹습니다.

즉 기술주, 가치주 모두 가격이 매우 비싸졌다는 뜻입니다. 작년 말부터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를 추천해온 모건스탠리는 지난 15일 "너무 올랐다"는 이유로 소형주에 대한 '비중 축소'를 권고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치주와 성장주가 하루 내렸다가 하루 오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전날 하원 금융위 증언에서 "자산 밸류에이션은 역사적으로 볼 때 높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주요 지수도 오르지를 못합니다. S&P 500 지수는 지난 2월8일 3915.59로 마감했습니다. 이날 종가는 3,889.14입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3850~3950 박스권에 갖혀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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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금리 상승

두 번째는 금리입니다. 기술주는 밸류에이션 저항을 뛰어난 실적으로 극복하는 듯 했습니다. 지난 2월 발표된 작년 4분기 기술회사들의 실적은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채권시장에서 역풍이 불었습니다. 지난 2월10일까지 연 1.1%대에 머물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후 급상승해 지난주 19일 1.74%까지 치솟았습니다. 금리에 약한 게 기술주입니다. 금리가 상승하면 미래 성장(이익)에 베팅하는 기술주의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니까요.

이번 주 들어 채권 시장은 다시 안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금리 상승세는 주춤합니다. 그래서 기술주가 어제 많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금리가 올해 내내 계속 안정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드뭅니다. 다가오는 경기 회복과 함께 금리는 꾸준히 올라갈 겁니다. 이날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이 발표한 미국의 3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는 59.0으로, 전월 확정치 58.6보다 상승했습니다. 또 서비스업 PMI 예비치는 전월 확정치 59.8에서 60.0으로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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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의장은 이날 증언에서 "올해는 매우, 매우 강한 해가 될 것 같다. 여전히 하방과 상방 위험이 있지만 성장 관점에서 보면 정말 강력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금리의 상승은 백신 뉴스와 성장 기대에 반응한 것으로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금리가 오르다 어느 순간 연 2%가 넘으면 자금이 채권으로 쏠리면서 기술주는 매력을 상당부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③ 코로나 재확산→경기 회복 지연?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 재확산으로 다시 봉쇄를 시작하거나 경제 정상화 계획이 연기되고 있습니다. 세계 보건기구(WHO)는 전날 전염성이 높은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 확산되면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신규 감염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가 아스트라제네카(AZ)의 코로나 백신의 임상시험 결과에 날짜가 지난 정보가 포함됐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것도 걱정을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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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봄과 함께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경기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란 기대에 찬 물을 부었습니다. 경기민감주들도 주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뭘 해야 할까요? 투자를 멈추고 지켜봐야 할까요?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재미있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1930년부터 따졌을 때 투자자가 매 10년마다 S&P 500 지수를 기준으로 최고의 날인 열흘을 놓칠 경우 총수익률이 28%에 그쳤다는 겁니다. 반면 지속적으로 투자했다면 수익률은 1만7715%가 되었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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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투자자가 정말 똑똑해서 10년 중의 최악의 열흘을 피해 현금만 들고 있었을 경우 수익률은 379만3787%에 달합니다. 또 최악의 날과 가장 좋은 날을 모두 제외하면 2만7213%의 이익을 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정점과 저점을 정확히 맞추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감안하면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단순히 투자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고 BofA는 결론을 냈습니다.

투자를 계속하는 게 현명하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무슨 주식을 사야할까요?

펀드스트랫의 톰 리 설립자는 미국 경제가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에서 회복됨에 따라 경기민감주를 살 것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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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CNBC 인터뷰에서 1년에 걸친 코로나 대유행 이후 현재의 투자 환경을 과거 대규모 전쟁 이후와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리는 "전쟁 후, 경제 주기에 민감한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주가 된다. 이라크전과 한국전, 세계2차 대전 이후 모든 그런 일이 있었다. 지금은 전후 환경과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계인 그는 JP모간의 수석전략가 출신으로 지난해 가장 먼저 강세장을 불렀던 전략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투자자들이 코로나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진앙지 주식'(epic center)을 갖는 게 향후 경기 상승의 순풍을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카지노, 크루즈, 호텔, 일부 항공사 등 여행 관련 기업 중 상당수가 훌륭한 비즈니스를 갖고 있다. 이들은 영업 레버리지가 커서 놀라운 실적 상승세를 보일 능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리는 또 기술주 등 성장주에서 장기간의 성과를 누려온 투자자들은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20년간 성장주가 많이 오른 건 금리가 계속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금리는 떨어지기보다는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리플레이션 환경으로 인한 수익 증가로 경기순환주들이 새로운 성장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올해 본격화될 기업간 인수합병(M&A)도 주가 상승을 지원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반면 골드만삭스의 브룩 데인 포트폴리오매니저(PM)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는 골드만삭스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에서해 기술의 시대인 만큼 엄청난 기회를 가진 기술주에서 기회를 찾을 것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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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초대형 기술회사 밑에 있는 미국의 중형 기술주에 큰 기회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엄청난 혁신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이 아직 잘 모른다는 겁니다.

데인 PM은 이런 중형 기술기업의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두 가지 근본적 동인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첫 번째는 퍼블릭 클라우드의 부상입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클라우드를 발전시키면서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언제든 확장 가능하고 혁신적이며 빠른 컴퓨팅 성능을 갖게됐다는 겁니다. "소프트웨어 회사와 디지털 경제의 성장에 클라우드 인프라는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해했습니다.

두 번째는 휴대폰의 등장입니다. 그는 "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칫솔보다 휴대폰을 더 많이 갖고 있다"며 "이런 네트워크의 끝단에서 생성되는 인텔리전스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컴퓨팅 파워는 광범위한 혁신을 위한 무대를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두 가지 큰 토대가 소프트웨어, 디지털 결제, 전자상거래 등 에서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데인 PM은 다만 "일부 기술 영역은 과대평가되어 매력적 기회가 많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금리 상승으로 가치평가가 낮아진다면 기회를 찾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는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30년 동안 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혁신과 더 파괴적인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며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새로운 반도체, 디지털 결제, 소프트웨어와 같은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데인 PM은 다만 "기술 투자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고 지적했습니다. 혁신에는 변화와 혼란이 따르며 이는 종종 기업들의 희생을 부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기술 생태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승리하고 패배하고 있는 지를 살펴 승자의 편에 있어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기술에 미칠 영향, 그리고 커지고 있는 기술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규제 가능성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워야한다고 밝혔습니다.

여전히 성장주, 경기민감주 어디에 투자해야할 지 판단이 어려우실 겁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사비타 수브라메니언 미국 주식 총괄은 "일반적으로 포지셔닝과 모멘텀 등을 포함한 요소들이 단기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내지만 펀더멘털 분석은 수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승리한다"고 말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