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형술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피가 흰 남극빙어 등 희귀생물 채집 큰 성과"
남극과 북극은 미지의 세계인 동시에 ‘미래 먹거리의 보고(寶庫)’라고도 불린다.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산업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바이러스, 신약 물질이 극지의 낮은 온도 속에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이 저마다 남·북극 연구에 나서는 이유다.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각국의 극지 연구 경쟁에 균열을 냈다. 뉴질랜드를 경유해 남극에 들어가는 항공편이 막히면서 극지 연구를 선도하는 국가들마저 남극 연구가 사실상 올스톱된 것이다. 세계 각국이 남극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10월 남극 연구를 위해 광양항을 출발한 한국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138일 동안의 남극 항해 일정을 마치고 지난 18일 광양항에 돌아왔다.

나형술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44·사진)은 이번 남극행 아라온호에서 11명의 연구원을 이끈 연구 총책임자다. 나 책임연구원은 지난 2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굉장히 귀중한 연구자료를 확보한 항해”였다고 지난 남극행을 평가했다.

“지난해는 미국 등 강대국의 남극 연구가 사실상 모두 멈춘 해였어요. 그런 시기에 저희는 나홀로 남극 연구를 성공적으로 해낸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수집하지 못한 우리만의 남극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좋은 연구는 결국 좋은 데이터에서 나오거든요.”

이번 항해엔 연구원 11명이 아라온호에 탑승해 9개 과제를 수행했다. 나 책임연구원은 특히 “세종과학기지 주변에 해저 지진계를 5개 설치해 지진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을 이번 항해의 중요한 성과로 꼽았다. 그동안 남극에서의 지진을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한 나라가 없었는데, 이번 지진계 설치로 남극해양 지질 연구에서 한국이 한발 앞서 나갈 수 있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나 책임연구원은 “남극빙어를 10여 마리 잡은 것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남극빙어는 지구상 물고기 중 유일하게 피가 흰색으로 확인된 어종이다. 골다공증 및 심혈관계질환 치료 물질로 주목받고 있지만, 주로 수심 100~500m의 깊은 곳 바닥에 붙어 서식해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극지연구소의 이번 남극빙어 채집은 2017년 한 마리 이후 처음이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나 책임연구원은 “전체 항해 기간은 138일이었지만 아라온호가 뉴질랜드에 정박하며 남극 현장을 오갈 수 없어 실제 연구 현장에 있던 기간은 25일에 불과했다”며 “연구 기간이 예년의 3분의 1 정도로 줄어든 셈인데 더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나 책임연구원은 “극지가 멀리 떨어진 것 같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이고, 미래의 수산자원도 분포하는 곳”이라며 “우리의 삶과 밀접한 곳이기에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찰과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