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해상 길목인 이집트의 수에즈운하를 막고 있는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수일간의 예인·준설 작업으로 물에 떴다. 지난 23일 좌초된 지 6일 만이다. 좁은 운하에서 선박이 비스듬히 틀어진 상태라 항행 재개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AP통신에 따르면 해운기업 인치케이프는 29일 “오전 4시30분께 예인팀이 에버기븐호를 물에 띄우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예인전문팀이 밀물로 일대 조수 수위가 높아진 새벽에 예인 작업을 벌였다. 예인선 10척과 준설기 등이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운하 항행 마비 사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예인 작업에 참여 중인 네덜란드 보스칼리스의 피터 베르도스키 최고경영자(CEO)는 “선미 부분이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선수(뱃머리) 쪽 선체 하단부는 여전히 모래진흙에 박혀 있다”며 “선수 쪽을 빼내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에버기븐호가 정상 항로인 수로 한가운데로 옮겨졌으며 엔진이 가동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오사마 라비 수에즈운하관리청장을 인용해 “선박의 방향이 80%가량 제 위치로 돌아왔다”고 했다. 라비 청장은 “제방과 4m 거리에 있던 선미가 이제는 제방에서 102m 떨어졌다”며 “이에 따라 배의 방향도 80%가량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어 “배가 완전히 물에 뜨면 국제 해양당국에 운하 통항을 재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항행 재개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일단 배가 빠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통항 재개 조치를 취한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수에즈운하 북쪽 방향 끝 지점에 있는 사이드항구 관계자를 인용해 “수에즈운하관리청이 일대 해운업체에 수에즈운하 통항 재개를 대비하라는 공지를 보내왔다”고 보도했다. 수에즈운하관리청은 에버기븐호가 운하에서 빠진 뒤 병목현상을 막기 위해 일대 선박 130여 척에 대해 우선 운항 계획 초안을 짜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과 유럽 간 주요 에너지 수송의 길목인 수에즈운하가 다시 뚫려 에너지 공급이 원활해질 것이란 기대에 이날 국제 유가는 장중 하락세를 탔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근월물은 배럴당 59.78달러에 거래됐다. 전일 대비 약 1.95% 내린 것으로 배럴당 60달러 선이 깨졌다. 23일 배럴당 57달러 선이었던 WTI 가격은 에버기븐호 좌초 사태 직후 61달러 선까지 올랐다. 브렌트유 근월물은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배럴당 63.62달러에 팔렸다. 전날 대비 약 1.47% 낮은 가격이다.

블룸버그통신 집계에 따르면 이날 기준 일대에서 발이 묶인 선박은 453척에 달한다. 수에즈운하는 세계 교역량의 12%를 담당한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