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6개월’. 사업주 등 기업 내 책임자가 안전·보건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면 오는 7월부터 법정에서 받게 될 최대 형량이다. 산업계에서는 “복합적인 산업재해의 책임을 모두 사업주에게만 떠넘기는 꼴”이라며 반발했지만, 대법원은 결국 29일 양형 기준을 확정했다.

대폭 강화된 양형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양형 기준 수정안을 이날 최종 의결했다 양형 기준이란 판사들이 형을 선고할 때 참고하는 가이드라인이다. 대법 양형위는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고가 날 경우 사업주뿐만 공사나 제조를 발주한 ‘도급인’도 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등 죄질이 좋지 않으면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까지, ‘다수범’ 혹은 ‘5년 내 재범’ 영역에 들어가면 법정 최고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해 최장 징역 10년6개월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기본 양형 기준은 6개월~1년6개월에서 1년~2년6개월로 상향 조정됐다. 가중영역은 10개월~3년6개월에서 2~5년으로, 특별가중영역은 10개월~5년3개월에서 2~7년으로 강화됐다. 다수범은 10개월~7년10개월15일에서 2년~10년6개월로 상향됐다. 기존 양형 기준보다 영역별로 2~3년씩 형량을 늘렸고, 5년 내 재범 관련 규정은 이번에 신설했다.

자수, 내부 고발은 ‘특별감경’에 해당한다. 수사에 협조하면 형을 깎아줄 수 있다는 뜻이다. ‘상당 금액을 공탁하는 것’은 감경 요인에서 빠졌다. 새로운 양형 기준은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과실 사고에 과도한 처벌”

양형위는 지난 1월 양형 기준 수정안을 처음 발표한 이후 온라인 공청회 등을 열며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고 설명했다. 2월 열린 공청회에서 지정토론자로 나선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형법상 고의와 과실은 아주 극적으로 차이 나는 범죄”라며 “업무상 중과실에 해당하는 위반이 있을 때만 높은 법정형이 적용되는 게 책임 원칙에 비춰 정당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업주가 의지를 갖고 작업환경을 개선 중인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특별감경인자로 추가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여전히 산업현장의 현실은 외면한 채 처벌만 강화하는 방향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기업 내 책임자들이 사고를 막기 위해 정확히 어떤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사업주에게 안전의무가 아니라 ‘만전의무’를 두는 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홍경호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사고 원인이나 의무위반 내용이 천차만별인데도 일률적으로 양형을 강화하는 것이 다른 범죄의 양형 기준과 비교할 때 형평성에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본인 또는 친족이 살해 위협을 받아 저지른 살인을 뜻하는 ‘참작 동기 살인’의 기본 양형 기준은 징역 4~6년이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