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모친 살해 뒤 구속…가석방 중 노숙
"피해자 쓰러진 뒤 911 신고전화 없었다"
검찰은 "혐오 범죄 혐의…최고 25년 징역"
뉴욕경찰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전 11시 40분 맨해튼 미드타운의 거리에서 필리핀계 이민자 빌라 카리 씨(65)를 무차별 폭행한 인물은 브랜던 엘리엇(38)으로 확인됐다. 그는 모친을 살해해 종신형을 선고 받은 뒤 가석방 상태에서 보호관찰을 받고 있었다.
최근까지 맨해튼 동쪽 할렘 지역의 ‘노숙자 쉼터’로 지정된 호텔에서 생활해 왔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뉴욕시는 작년 3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선언 이후 뉴욕 내 호텔들을 임차해 노숙인 쉼터로 활용해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자는 취지였다.
엘리엇은 사건 당시 피해자를 발로 강하게 걷어찬 뒤, 피해자가 바닥에 쓰러지자 머리를 세 차례 짓밟았다. 그러면서 ‘멍청한 중국인’ 등 욕설과 함께 “당신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You don’t belong here)”고 소리를 질렀다. 피해자가 기절하자 손에 든 물건을 위협적으로 흔들며 달아났다.
경찰은 엘리엇을 두 건의 폭행 및 1건의 폭행 미수 혐의로 체포한 뒤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뉴욕검찰은 두 가지 혐의 모두 ‘증오 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유죄가 확정되면 엘리엇은 최고 25년형의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사이러스 밴스 주니어 맨해튼 지방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분명히 말하지만, 용감한 카리 씨(피해자)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은 모두 미국에 속해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02년 19세였던 엘리엇은 5살짜리 여동생 앞에서 모친의 가슴을 세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했고, 2급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6년간 복역한 이후 두 차례의 가석방 신청이 거부됐으나 2019년 11월 출소할 수 있었다.
일각에선 뉴욕 내 수감 시설 부족이 엘리엇과 같은 잠재적인 범죄자를 거리로 내보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피해자인 카리 씨가 폭행 당할 당시 보안 요원으로 추정되는 남성들이 해당 상황을 건물 안에서 지켜보면서도 폭행을 말리기는 커녕 출입문을 닫아버리는 모습이 CC(폐쇄회로) TV에 찍혀 공분이 일기도 했다. 이 동영상이 소셜미디어 등에 퍼지자 이 보안 직원들은 건물 관리회사에서 정직 처분을 받았다.
길거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카리 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사람은 주변을 순찰 중이던 경찰이었다. 뉴욕경찰은 “이번 폭행과 관련해 911 신고 전화는 없었다”고 확인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버나디노 캠퍼스가 경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작년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뉴욕시였다. 올 들어서도 뉴욕에서만 반(反)아시아 혐오 범죄 신고가 33건 접수됐다. 작년 수준(28건)을 이미 넘어섰다.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