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대한 문명적 이해…美 국무부는 왜 한국을 비판하나 [한경 조일훈 편집국장 뉴스레터]
미국 국무부가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의 부패와 성추행 사건을 중요한 인권 문제로 거론했습니다. 법률적으로는 대북 전단 살포 불법화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 제한과 군대 내 동성애 불법화 등을 꼽았습니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특정 공직자들을 콕 집어서 인권침해 사례로 지목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의아하기도 합니다. 개인 단위의 부패나 성추행을 국가의 인권 문제로 제기했으니까요. 거명된 사람들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겁니다. 중국 같은 나라는 자국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미국에 내정간섭이라고 노골적으로 반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미얀마 군부의 폭압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것이나, 민주당 의원들이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강력 비난하는 서한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것과 동일한 성격입니다.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영국 호주 등 40여 개국이 북한의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서명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권 문제가 내정간섭 논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인권이 갖고 있는 특수성 때문입니다. 인권은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개념을 정립하고 실행에 옮겨온 가치입니다. 누군가 던져주거나 주입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도덕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다듬어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 죽이지 말라’ ‘남의 물건 훔치지 말라’는 규범도 당초 종교적 율법에서 시민들의 계약과 제도로 발전한 것 아니겠습니까.

인권은 보편적 가치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지닌 것입니다. 그래서 문명국들은 인권을 법으로 보호합니다. 우리도 최상위 법률인 헌법으로 보장합니다. 그래서 부패는 본질적으로 반인권적입니다. 법이 있어도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들은 부패도 처벌하지 못합니다. 조국 윤미향 박원순 오거돈의 부패가 인권리스트에 오른 것은 이런 맥락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므로 국경을 초월합니다. 인권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입니다.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모든 인류의 문제입니다. 중국 북한 미얀마의 사례에서 보듯이 어떤 나라가 자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할 경우 전 세계가 달려들어 문제를 삼는 이유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인권문제 제기는 타당합니다.

거꾸로 미국 내부의 인종주의, 총기소유, 광범위한 폭력 사태 등도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들이 문제 제기할 수 있습니다. 서로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권침해를 빤히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문명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피해자들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반인권적입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잡게 된 이유도 본질적으로 인권수호에 대한 노력이 국민들로부터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진영이나 이념적 잣대로 고위 공직자들의 위선과 탈법을 옹호하는 것은 북한이나 중국의 인권침해에 침묵하는 것과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미국은 한국의 특정인을 망신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용인하고 있는 부패가 반인권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조국과 윤미향을 수호하고 성추행 피해자에 대해 2차 가해를 한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는 자명합니다.

조일훈 편집국장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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