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식물 세밀화가 아니라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botanical illustration)을 그리는 식물학자입니다.”

식물학자이자 과학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인 신혜우 박사(사진)의 말이다. 최근 서울 중계동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난 그는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은 연구 결과물을 물감이나 연필로 그리는 과정에서 예술적 가치도 인정받은 것”이라며 “국내엔 아직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에 딱 떨어지는 번역어가 없다”고 설명했다.

신 박사의 전공은 식물분류학이다. 식물을 발견하고 채집·분류해 진화의 역사를 보전하는 학문이다. 경북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센터 식물생태연구실, 이화여대 식물계통분류학 연구실 등에서 일했다.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은 식물분류학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수단이다. 씨앗의 크기와 돌기 모양, 꽃의 개수, 뿌리의 굵기 등 어느 하나 빠뜨려선 안 된다. 2010년 영국 유학 때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8년엔 독도에 사는 식물 종자를 그린 시리즈로 영국왕립원예협회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국내 학자 중 처음이다.

“식물을 바라볼 때 그냥 기분이 편안해져요. 좋아하는 걸 연구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치유하고 평온을 얻습니다. 최근 많은 분이 반려식물을 키우시는데, 너무나 반가운 일이죠. 햇볕을 쬐이고, 물을 주고, 흙을 갈아주는 등 식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우리의 몸도 같이 건강해지니까요.”

신 박사는 ‘식물 상담소’ 프로그램도 매달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19년 9월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플리마켓이 열렸을 때 무료로 진행한 뒤 반응이 좋아서 계속하고 있다”며 “초등학생부터 노년층까지 매우 다양한 식물 관련 고민을 들고온다”고 소개했다.

신 박사는 1일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시작한 ‘이웃집 식물학자의 초대, 봄꽃봄’ 전시회를 오는 29일까지 연다. “제 꿈은 ‘동네 식물학자’입니다. 우리 동네에 사는 식물들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학자가 되고 싶어요. 식물 사랑을 계속 널리 퍼뜨려야죠.”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