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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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법이 빨리 처리돼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언론에서도 관심 가져주세요.”

[임현우의 Fin토크] 카카오 들어오라고 하세요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일이 가로막혀 많이 답답하다고 했다. 2년 전 이맘때 금융위원회 공무원들에게 자주 듣던 얘기다. 요즘 국회는 법안들이 일사천리로 통과돼 문제라는데, 당시 국회는 너무 안 돼서 문제였다. 금융위는 연내 입법이 절실한 ‘8대 법안’을 정해 공을 들였다.

마이데이터(MyData)라는 새로운 업종을 도입하는 법적 근거를 담은 ‘신용정보법’도 8대 법안 중 하나였다. 금융위 공무원들을 몇 달 더 애태우다가 그래도 일찍, 지난해 1월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올 1월엔 네이버와 토스, 대형 은행과 카드사 등을 포함해 28개 업체가 마이데이터 본허가를 따냈다. 오는 8월부터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가 쏟아진다.

마이데이터는 은행, 카드, 증권, 보험, 인터넷 쇼핑몰 등 여러 곳에 퍼져 있는 개인정보를 한데 모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과거에도 핀테크 업체들이 스크래핑(긁어오기) 기술을 활용한 통합 자산조회 등을 선보이긴 했지만, 앞으론 마이데이터 사업권을 받은 곳만 이런 서비스를 할 수 있다. 핀테크 시장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이유다.

마이데이터 사업 '논란의 낙오자들'

한쪽에는 예상치 못한 이유로 마이데이터 사업권 획득에 뒤처져 노심초사하는 업체들이 있다. 금융당국 심사에는 자본금, 보안체계, 사업 계획 등 여러 요소가 반영되는데 문제가 된 것은 ‘대주주 적격성’이다. 의결권 있는 지분을 10% 이상 보유한 주주에게 형사소송, 제재 등이 진행 중이면 허가 심사가 중단된다. 카카오페이, 경남은행, 삼성카드, 하나금융 4개 계열사 등이 이 규정에 발목을 잡혔다. 경남은행은 BNK금융지주의 주가 조작 혐의 재판이, 삼성카드는 삼성생명의 암보험금 관련 기관경고가, 하나금융은 4년 전 시민단체 고발 건이 걸림돌이 됐다.

카카오페이의 사연은 좀 독특하다. 중국 인민은행에서 공문이 안 와서다. 금융감독원은 카카오페이 2대 주주인 앤트그룹(알리페이)이 현지에서 제재받은 이력이 있는지를 인민은행에 질의했는데, 몇 달째 똑 부러진 답이 오지 않고 있다. 앤트그룹이 중국 정부에 미운털 박힌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추측이 나온다. 다급해진 카카오페이는 국내외 로펌과 함께 인민은행의 제재 내역을 샅샅이 뒤져 “문제가 없다”는 증거를 제출하기도 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인민은행의 서면 답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카카오페이는 지난달 5일 ‘자산조회’ 서비스를 중단했다. 마이데이터 사업권이 없는 사업자가 유사 서비스를 운영하면 이날부터 불법이 됐기 때문이다. 3500만 명이 쓰는 핀테크 앱이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닫아둔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조건부 허가라도 달라"는 CEO 호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당국 입장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개인정보를 다루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00% 공감하기도 어렵다.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다. 금융위는 하나금융 4개 계열사에 대한 마이데이터 심사를 지난달 말 재개했다. “소비자 피해, 산업 특성 등을 고려한 적극 행정 차원”이라고 했다. 향후 부적격 사유가 확정되면 취소가 가능하도록 조건부 허가를 내줄 전망이다.

네이버도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불거졌지만 우회로를 찾아 피해갔다. 네이버파이낸셜은 2대 주주 미래에셋증권이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보통주를 전환우선주로 바꾸는 방식으로 미래에셋증권의 의결권 있는 지분율을 9.5%로 끌어내렸다. 금융위는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플랫폼 기업은 선점 효과가 중요한데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국내 라이선스를 해외 당국이 좌지우지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류 대표 주장에 공감하는 이들이 핀테크업계에는 꽤 있다.

금융당국은 마이데이터를 ‘혁신금융’의 대표적 성과로 강조해 왔다. 지금의 심사중단 제도가 ‘시장친화적이지 않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것으로 임무가 끝나는 게 아니다. 적시 적기에 판을 깔아주는 일도 챙겨야 한다. 마이데이터 사업권을 따내려고 수십 곳이 줄을 서 있어서 하는 얘기다. 적극적으로 기회를 나눠줬으면 한다. “경쟁하러 들어오라”고.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