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2조3000억달러 인프라 투자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공화당 상원 서열 4위인 로이 블런트 의원은 4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해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며 인프라 투자 규모를 6150억달러로 낮춰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2조3000억달러 중 30% 정도만 “도로, 교량, 공항, 항만, 통신망, 수도관 등 전통적 인프라”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블런트 의원은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전기차 인프라 등 전통적 인프라 외에 다른 부분은 공공과 민간의 합작 투자를 통해 추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부분까지 전적으로 정부 재정으로 해결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공화당 1인자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계획 및 증세 방안과 관련해 “미국에 대한 잘못된 처방”이라며 “모든 단계에서 맞서 싸우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조3000억달러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올리고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버는 이익에 대한 최저세율 인상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상원에서 공화당 반대를 넘기 위해 단순 과반(51표 이상)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예산조정 절차’를 쓰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상원은 전체 100석 중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을 차지하고 있지만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면 공화당이 반대해도 51표를 확보할 수 있다.

CNBC는 “바이든은 초당적 법안 통과를 원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공화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밥 케이시 민주당 상원의원은 지난 1일 “인프라 투자 계획은 단순히 규모와 범위 때문만이 아니라 비용을 어떻게 분담하고 지원받을 것인지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하원 세입위원장인 리처드 닐 민주당 의원도 “대통령의 제안 일부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 중인 법인세 인상을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상원 재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론 와이든 민주당 의원은 “바이든 행정부 계획과는 다른 방식의 세금 인상안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피터 디파지오 하원 교통·인프라위원장(민주당)은 법인세 인상 대신 휘발유세와 디젤세를 인상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진보진영에선 인프라 투자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경선 때 바이든과 막판까지 경합했던 버니 샌더스 상원 예산위원장은 기후변화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의 인프라 투자 계획이 오른쪽(공화당)은 물론 왼쪽(민주당)에서도 공격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인프라 투자 계획은 속전속결로 진행된 1조9000억달러 부양책처럼 빨리 처리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