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은 서늘한 푸른빛을 띤 감성 누아르다.

박 감독의 대표작 '신세계'(2012)가 범죄조직 내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낙원의 밤'은 조직에 버림받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며 서정성을 더한다.

영화는 어둡고 흐린 제주도를 배경으로 삶의 끝자락에 선 인물들을 내세운다.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은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 처연한 느낌을 준다.

복수든 성공이든 뚜렷한 목적을 가진 기존의 누아르 주인공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범죄 조직의 에이스 태구(엄태구)는 하루아침에 사랑하던 조카와 누나를 잃는다.

상대 조직인 북성파에 복수를 한 뒤 러시아로 밀항하기 전 제주도에 잠시 몸을 숨기게 된다.

가족을 잃고 복수까지 마친 그는 더는 삶에 희망이 없다.

태구가 은신한 제주도에는 무기상을 하는 삼촌과 함께 사는 재연(전여빈)이 있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재연은 어떤 상황에서도 초연하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며 두려움 없이 행동하는 모습 뒤에는 아픔을 지니고 있다.

태구를 쫓아 제주도에 내려온 북성파 이인자 마 이사(차인표)는 재밌지만 무서운 인물이다.

의리를 중시하는 것 같지만 현실적이고, 잔혹하다.

태구의 처지를 이해하고 동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이야기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핏빛 액션이다.

태구가 북성파에게 복수하는 장면부터 마 이사가 태구를 쫓고 처단하는 시퀀스까지 영화 곳곳에 무게감 있는 액션이 펼쳐진다.

싸움의 주된 도구는 칼로 군더더기 없는 액션은 잔혹함을 더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감정을 배제한 채 담담하지만 빠르게 휘몰아치는 액션이 압권이다.

작품이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 공개를 택하면서 이런 액션신을 작은 화면으로 봐야 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마 이사는 태구를 배신한 조직의 보스를 비롯해 수십 명의 조직원을 거느리며 혼자인 태구보다 힘적인 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한다.

이를 뒤집을 만한 큰 반전 요소는 없어 보이는 상황은 비정함을 더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푸른 색감을 덧입고 있다.

제주도 바다처럼 밝고 파란 푸른빛이 아니라 쓸쓸함이 배어있는 서늘한 푸른빛이다.

이 푸른빛에는 예정된 죽음이 주는 차가움도 담겨있다.

'낙원의 밤'이란 제목처럼 행복한 여행지로만 여겨지던 제주도의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감독 데뷔 전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각본으로 충무로 스타 작가로 자리매김한 박 감독은 장기를 잘 살려 탄탄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얽히고설켜 있는 인물들의 관계는 영화의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한다.

마 이사와 재연의 독특한 캐릭터가 살리는 말맛과 빠지면 아쉬운 짜장면, 물회 등 음식을 먹는 장면은 극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는 지난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으며 평단의 주목을 샀다.

독특한 캐릭터들로 각자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배우들은 누아르에 감정을 더한다.

엄태구의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는 영화 전반의 무게를 지탱하고, 오랜만에 강인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차승원의 카리스마와 절제된 유머는 영화의 비장함을 살리면서도 중간중간 긴장감을 완화한다.

누아르에서 보기 드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한 전여빈은 영화에 다채로운 매력을 더한다.

영화는 오는 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