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반도체 공급난은 4월 한 달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 문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아산공장위원회가 7일 배포한 소식지 일부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공장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면서도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회사의 휴업 제안을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31일부터 아산공장 휴업 건을 노조와 논의해왔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조가 “임금 손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한 결과다.

그랜저와 쏘나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은 차량 전장시스템 전반을 제어하는 ‘파워 컨트롤 유닛(PCU)’ 수급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전해졌다. 부족 물량은 7000대가량으로 추산된다. 아산공장은 당초 사흘은 휴업하고, 나흘은 절반만 가동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5000대는 휴업으로, 2000대는 50% 감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

노조가 거부하자 회사는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5일간 휴업하되, 평균 임금의 70%를 지급하는 안이었다. 5일 동안 일하지 않아도 닷새치 임금의 70%는 주겠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어쨌든 임금 손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회사는 다시 이틀만 휴업하되, 임금의 70%는 지급하고 이틀은 온라인 자택 교육을 진행하는 방안을 전달했다. 노조의 답은 바뀌지 않았다. 차량용 반도체를 제때 조달하지 못한 회사에 책임이 있는데, 노조원이 이틀치 임금의 30%를 손해볼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문제는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가 모두 겪고 있다. 이들은 일찌감치 감산 체제에 돌입했지만 그나마 현대차는 미리 확보한 물량으로 지금까지 버텼다는 평가다.

그랜저는 국내 판매 1위 세단이다. 그랜저 판매량을 고려하면 공장을 더 돌리고 싶은 것은 오히려 회사다. 차량용 반도체가 없어 생산을 못하는 상황인데도 휴업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노조를 두고 일하지 않고 돈만 받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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