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에 12년째 발 묶인 레미콘…운반비 폭등 '부작용 속출'
지난달 중순 강원 원주지역 한 건설 공사 현장에 레미콘 타설을 위해 위해 콘크리트믹서트럭 한 대가 들어서자 3명의 노동조합원들이 진입을 가로 막았다. 그 중 한 명이 멈춰선 트럭 앞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쓰러지는 시늉을 했고, 다른 한 명이 사진을 찍으며 트럭이 사람을 받아치는 듯한 연출을 했다. 운반비 인상을 위한 투쟁에 합류하지 않은 다른 노조단체 소속 레미콘운송차주에 앙심을 품고 납품을 방해한 것이다. 지난 5일 청와대 게시판엔 “양대 노총의 시위로 원주지역 건설 노동자들의 생계가 막막해지고 있다”며 “레미콘이 출하되도록 도와달라”는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국토교통부가 건설기계 임대업자를 보호하기위해 12년째 콘크리트믹서트럭 신규 등록을 중지한 가운데, 레미콘업계가 공급 차량 부족에 따른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정부가 신규 진입을 금지하면서 레미콘업계에선 운반비 68.6%급증, 불법 번호판 거래, 사고 위험 및 미세먼지 발생 증가, 폐업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레미콘업계는 정부가 올해 수급조절 대상에서 콘크리트믹서트럭을 제외해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의 순기능을 되살려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조웅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레미콘은 전체 925개 업체 중 98%가 중소기업”이라며 “정부가 12년간 5만여명의 레미콘업계 종사자는 도외시한 채 노조의 권력을 등에 업은 2만여명 운송차주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운반비 69% 급등…번호판거래 ‘암시장’도

국토부는 콘크리트믹서트럭을 수급 조절 대상에 제외시킬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지난달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이번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7월 열리는 건설기계수급조절위원회에서 콘크리트믹서트럭 등의 수급조절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유진, 삼표, 아주 등 레미콘업계는 올해엔 예년과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는 건설기계 대여시장의 안정화를 목적으로 2007년 도입됐다. 굴삭기, 불도저, 덤프트럭 등 27종의 건설기계를 대상으로 2년마다 수급조절 여부를 심의한다. 콘크리트믹서트럭과 덤프트럭은 건설기계 중 유일하게 2009년부터 현재까지 12년간 신규 진입이 금지됐다. 콘크리트믹서트럭이란 레미콘을 실어 나르는 차량으로 레미콘업계에선 유일한 운송 수단이다. 레미콘은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 물 혼화제 등을 섞어 만든 건설 기초자재다.

그동안 콘크리트믹서트럭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부작용이 컸다는 분석이다. 한국레미콘공업협회에 따르면 전국 건설현장에서 필요한 콘크리트믹서트럭은 2만4526대인데, 실제 2만1419대만 운행되고 있어 3107대가 부족한 상태다. 최근과 같은 성수기(매년 3~5월)땐 공급 부족이 6302대로 2배로 늘어난다. 이로인해 레미콘 운반비는 1회 운송당 2009년 3만313원에서 현재 5만1121원으로 12년간 68.6% 급증했다. 같은 기간 레미콘 공장갯수는 893개에서 1083개로 21.3%증가했고 레미콘 가격도 ㎡당 5만6200원에서 6만2100원으로 10.5%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다는 평가다.

레미콘 운송차주들이 2012년부터 단체를 결성해 매년 운반비 인상을 요구하며 운송거부 등 단체행동을 벌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 레미콘업체 사장은 “사실상 공급 독점의 집단 카르텔이 형성돼, 작년 여러 업체들이 운반비를 안올려줬다고 레미콘 공급을 중단해 폐업하는 사례가 발생했다”며 “시장 불균형이 지속되면서 잦은 공사 중단으로 건설사와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총량제로 묶이다보니 기존 사업권이 높은 가격을 주고 매매되는 암시장도 형성됐다. 사업자가 은퇴할 경우에 신규 진입이 가능한데, 차량 구입비에 ‘번호판 프리미엄’이라는 웃돈을 얹어줘야만 거래가 가능한 것이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번호판 프리미엄을 주는 것은 불법”이라며 “‘정년없이 주40시간만 근무하는 일자리’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인기가 높아져 번호판 프리미엄이 최근 4000만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노후화에 잦은 사고·미세먼지 문제도

콘크리트믹서트럭 신규 진입을 막으니 안전과 환경 등 사회적 문제도 일으켰다. 레미콘공업협회에 따르면 전체 차량 가운데 10년이상 노후 차량 비중이 40%이고, 20년 이상 비중도 14%에 달한다. 운전자 연령대도 60대 이상이 46%다. 콘크리트믹서트럭 제조업체 관계자는 “노후된 차량을 제때 정비하거나 교체하지 않으면 자체 결함으로 교통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며 “이러한 안전문제 때문에 버스의 경우 차령이 11년이상이면 무조건 운행을 중단하지만 콘크리트믹서트럭은 그러한 규정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9년 경기 용인에서 노후화된 콘크리트믹서트럭의 브레이크고장으로 29중 추돌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콘크리트믹서 트럭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 역시 큰 문제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1대당 미세먼지 배출량이 약 1.4㎏인데 반해 덤프와 콘크리트믹서트럭은 1대당 15㎏의 미세먼지를 배출해 자동차보다 약 11배 높은 미세먼지를 배출한다. 콘크리트믹서트럭 제조업체 관계자는 “노후차량의 미세먼지 배출 문제는 수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20년이상된 제품의 경우 미세먼지 배출량이 최근 출시된 제품보다 3배~4배 수준으로 많다”고 밝혔다.
지난달 강원 원주지역 한 레미콘 공장 입구를 노동조합단체에서 중장비를 동원해 봉쇄한 장면. 레미콘업계 제공
지난달 강원 원주지역 한 레미콘 공장 입구를 노동조합단체에서 중장비를 동원해 봉쇄한 장면. 레미콘업계 제공

업계 빠진 수급조절위 "노조 입장만 반영"비판도

신규 진입 금지로 몸값이 높아지고 있는 레미콘 운송차주를 상대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이 세 확장 경쟁을 벌이면서 업계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작년 8월 경남 김해 지역에선 레미콘 운송차주 100여명이 한국노총에 가입했다가 1주일 만에 탈퇴하고 다시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달 강원도 원주에선 레미콘 운송차주간 일자리 배정 문제를 놓고 양대 노총이 맞불집회를 벌이며 충돌해 인근 건설 현장과 레미콘 공장이 올스톱되는 사건도 벌어졌다.

올해 신규 진입 가능 여부를 결정할 건설기계수급조절위는 국토부, 산업통상자원부, 서울시, 부산시, 경기도 등 관련 공무원과 대학 교수, 민주노총, 한국노총, 건설기계 제조사측 단체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레미콘업계는 빠져있다. 레미콘공업협회 관계자는 “직접 이해당사자인데도 레미콘 중소기업인들은 한번도 수급조절위 위원에 포함된 적이 없다”며 “전체 15명 위원 가운데 노동조합 소속이나 친노조 성향분들이 많아 현장의 목소리를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 타타대우 등 콘크리트믹서트럭 제조업체들은 시장 불균형의 문제점을 국토부에 수차례 건의했다. 레미콘업계 역시 수급조절 규제를 푼다면 3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국토부는 임대업체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국토부 관계자는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연구 용역 결과에 따라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