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인사와 주주총회를 통해 기업들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에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일부 기업들은 세대 교체와 전략 사업 추진을 위해, 몇몇 기업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극복을 위해 재무 부문 수장을 교체했다. 보수적인 문화로 유명한 대기업이 젊은 CFO를 등용하는가 하면, 최근엔 외부출신 CFO를 쓰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외부 출신 CFO 선임은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일반적이지만 국내에선 아직 낯설다.

전략사업 추진과 세대 교체
롯데칠성음료는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송효진 재경부문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1976년생인 송 부문장은 작년말 정기인사에서 부문장으로 승진했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첫 여성 CFO다. 외부출신 CFO인 것 역시 롯데그룹에선 최초다. 한영회계법인 출신 공인회계사인 송 부문장은 2014년 롯데그룹에 합류했다. 롯데쇼핑도 지난달 주총에서 최영준 재무총괄본부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등 롯데그룹은 최근 몇 년 사이 경영진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그룹 안팎에선 최근 모바일 정보통신(IT)기술 발전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부상 등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맞추기 위한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그룹이 보수적인 문화를 바꾸지 않고 유통 온라인화 등 시대 변화에 뒤떨어지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인사라는 해석이다.

SK하이닉스는 올 초 전략담당이던 노종원 부사장이 CFO를 새로 맡았다. 1975년생인 노 CFO는 2003년 SK텔레콤에 입사한 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함께 하이닉스 인수팀에 참여했고, 도시바메모리 투자, ADT캡스 인수 등 그룹의 주요 기업 인수합병(M&A) 건에 관여한 전략 전문가로 알려졌다. 지난해 계약한 10조원 규모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 마무리 작업 등 미래성장 동력 확보와 재무 안정을 동시에 고려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라'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정유업계의 주요 기업들의 CFO도 교체됐다. SK이노베이션은 올초 김양섭 부사장을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새로 선임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원자재 가격 폭락과 석유 수요 급감으로 매출이 전년 대비 30%이상 급감하고 2조5688억원의 영업손실은 기록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까지 석유자회사 SK에너지 등을 관할하는 재무2실장을 맡아온 김 부사장은 SK이노베이션 전체 위기를 극복하는 중책을 맡았다. 배터리 부문이 아직 막대한 시설 투자가 필요한데, LG화학과의 미국 소송에서 패배해 더욱 어려움이 예상된다.

지난달 에쓰오일도 9년간 재무수장을 맡아온 조영일 수석 부사장을 대신해 방주완 부사장에게 CFO의 중책을 맡겼다. 이 회사 역시 매출이 2019년 24조원대에서 지난해 16조원대로 30%이상 줄고, 1조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5조원을 투입한 시설이 준공돼 가동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올해초 CFO가 바뀌었다. 현대차 출신으로 2년간 현대제철 CFO를 맡은 서강현 부사장이 친정의 곳간을 맡았다. 첫 대규모 해외 M&A인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종결 등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