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지 2개월이 지나면서 바이드노믹스의 윤곽도 뚜렷해지고 있다. 예상대로 트럼프노믹스를 지우는 대신 오바마노믹스를 복원하는 내용으로 일관돼 있다. 하지만 트럼프노믹스를 이어받으면서 오바마노믹스를 뛰어넘는, 즉 미국 개조를 통해 중국과의 경제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정책이 눈에 띈다.

바이드노믹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 개조’와 ‘경제패권 확보’라는 양대 목표가 잘 녹아 있는 것이 ‘인프라 확충계획’이다. 이번 계획의 추진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고압 경제’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고압 경제란 한마디로 ‘넘치는 것이 모자라는 것보다 낫다’는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에 근거한 정책 처방이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은 1950년부터 1988년 은퇴할 때까지 예일대에서 화폐 경제학을 가르친 제임스 토빈으로부터 출발했다. 정책적으로는 아서 오쿤, 로버트 솔로, 케네스 애로 등과 함께 1960년대 케네디와 존슨 정부 시절 실행된 경제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윌리엄 노드하우스, 로버트 실러 등이 뒤를 이었다.

전체적인 기조는 경기침체, 위기극복 등과 같은 단기과제 해결은 케인지언 이론을 선호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과 완전고용 등과 같은 장기과제는 신고전학파 이론을 받아들인 독특한 정책 처방 패키지다. 단기과제는 총수요와 총공급(혹은 IS/LM) 곡선으로 이해하고, 지속 가능 성장과 고용 창출 등의 장기과제는 토빈과 솔로 모델을 선택했다.

바이든 정부가 경기부양책과 함께 인프라 확충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대내적으로 낙후된 인프라를 개조해 민간기업 활동과 국민 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취업이 어려운 중하위 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1930년대 뉴딜정책 관점에서다.

대외적으로는 바이든 대통령 집권 기간(연임 가정) 중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크다. 지난해 중국 경제는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넘는 수준까지 추격해 왔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등은 2028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중국 견제책의 핵심은 ‘반도체 굴기’다. 국적과 관계없이 미국 밖의 반도체 회사를 끌어들이는 ‘리쇼어링’과 함께 미국 내 연관산업을 반도체로 집중시켜 가치사슬(AVC: alliance value chain)의 중심지를 미국 내에 두겠다는 구상이다. 같은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시진핑 정부의 ‘제조업 2025’ 계획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경제대국의 패권 다툼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80년대 미국이 일본의 부상을 견제할 목적으로 한국과 맺은 반도체 협정이 한국 반도체산업의 뿌리가 됐다. 미국이 한국의 반도체 육성정책을 지원해 초기 비용과 시장진입 장벽을 낮춰준 것이 압축성장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1990년대 이후 약 20년 동안 한국 경제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성장기를 누린 한국 반도체산업에 위기로 다가온 것이 중국의 ‘제조업 2025’ 계획이다. 시진핑 주석의 주도로 모든 국가 역량을 집중시켜 반도체 자급률을 70%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에 위협을 느낀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견제로 한국 반도체산업은 위기 상황을 피해 가는 듯했다.

하지만 반도체 굴기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번에는 한국 정부와 반도체 업체들이 잘못 대처했다간 오래전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예고했던 ‘샌드위치 위기론’에 몰릴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양국으로부터 자국 내 생산기지 증설과 추가 투자를 요구받는 상황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바이든 정부는 통상법 232조를 근거로 안보, 시진핑 정부는 외교 문제로 연계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만을 감안해 경제적으로 중국에 쏠려 있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를 좀처럼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급변하는 미·중 간 경제패권 다툼에 맞춰 대외경제정책 우선순위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최소한 ‘친미원중(親美遠中)’ 기조인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전략과 절충을 모색해야 할 때다.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FT)가 삼성전자보다 핫(hot)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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