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부족 사태…승자와 패자는?
글로벌 반도체 부족 사태가 미국의 경기 개선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급 병목 현상이 풀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수요는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및 장비 업계는 수혜가 예상된지만 설계업체(팹리스)는 곤란을 겪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또 정보기술(IT) 자동차 가전 등 반도체 수요 업종에선 협상력이 있는 시장 주도 기업은 혜택을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피해가 예상
된다.

글로벌 채권운용사인 핌코는 지난 8일 '글로벌 반도체 부족 : 승자와 패자'(Global Chip Shortage: The Winners and Losers)라는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다음은 핌코 보고서 전문이다.

반도체는 자동차에서 PC, 게임 콘솔, 스마트폰과 같은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전력을 공급한다. 이런 반도체의 최근 부족 사태는 소비자 물가, 기업 이익, 고용, 인플레이션, 심지어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올 하반기 자동차 반도체의 병목 현상은 다소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반도체 수요 증가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 장기적으로는 가전제품 등 기존 전통적 수요와 함께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용 반도체 등 새로운 부문의 수요 증가가 더해지면서 반도체 산업에서는 '슈퍼 사이클'이 예상된다.

반도체 부문에서 상당한 기회를 볼 수 있지만, 어떤 기업이 승자 혹은 패자가 될지 예측할 때는 다양한 위험이 있다.

글로벌 칩 부족의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 ①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 및 수요 역학의 중단 ② 미국과 중국 간의 지속적 지정학적 갈등이다.

코로나 대유행 기간 수백만 명이 집에 머물게 되면서 가전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글로벌 PC 출하량은 2020년 전년보다 4.8% 늘어난 2억7500만대에 달했다. 2020년 4분기만 따지면 10.7% 증가했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동시에 2020년 상반기 신차 주문이 감소함에 따라 자동차용 반도체 주문은 줄었다. 반도체 파운드리 업계는 생산 능력을 보다 정교하고 더 나은 마진을 제공하는 소비자용 제품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산업용 반도체 생산 능력은 감소했다. 2020년 하반기 자동차 수요가 반등했을 때 자동차 회사들은 충분한 칩을 확보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는 미국 소프트웨어 및 장비에 의존한다. 2019년 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기술 수출을 제한한 뒤 중국 기업들은 반도체 재고 비축에 나서 반도체 부족 사태에 기여했다. 중국의 반도체 수입은 2020년 전년 대비 14.6% 증가한 3500억 달러(국내총생산의 2.4%)로 늘어났고 기술 및 R&D(연구개발) 투자도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1.2%에서 2020년 GDP의 1.5 %로 증가했다.

이런 지정학적 긴장은 글로벌 기술 기업들의 투자하려는 욕구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지금은 첨단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가진 기업이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부족 사태는 더욱 심화됐다. 글로벌 파운드리 수익의 83% 이상이 대만과 한국 회사에서 창출된다. 첨단 반도체의 경우 더욱 그렇다. '저스트-인-타임(Just-in-time : 생산 시점에 맞춰 최적기에 부품을 공급받는 방식)' 모델은 안정적 수급이 이뤄지는 환경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 이제 부분적으로 미국 기술에 대한 접근과 관련된 공급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중국 및 글로벌 제조업체는 '저스트-인-케이스(Just-in-case : 비상시에 대비해 재고를 쌓아두는 방식)' 모델을 고려해야할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부족 사태는 정보기술(IT) 하드웨어 가격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 중국 가전 제조사들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주목할 만한 가격 인상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는 또 부분적으로 기판, 웨이퍼와 같은 원료의 공급 부족을 반영한다. 거시경제적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이 IT 기기의 가격을 높이고 관련 소매 판매 및 마진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장기적 현상이 될 수 있다. 자본 집약도가 증가에 따라 반도체 부문의 진입 장벽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칩 원가 상승에 직면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반도체 가격이 10% 상승해도 자동차 생산 원가엔 약 0.2% 상승효과만 미치기 때문에 글로벌 소비자 물가(CPI)가 크게 높아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대휴행은 각 산업과 기업들의 디지털화를 촉진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경제 회복 사이클에서 지켜봐야할 건 인프라가 아니라 반도체다. 반도체는 경제 회복의 핵심 원동력이며 스마트 그리드, 5G, 전기차 증가와 같은 추세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우리는 2021년 세계 반도체 자본투자(capex)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만, 한국, 중국이 이를 지속적으로 선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반도체 수출은 2020년 한국 GDP의 6%, 대만 GDP의 20%를 차지한다. 대만과 한국은 향후 3~5년 동안 계속 반도체 기술의 리더로 남을 것이며, 이는 경제 성장 및 통화 강세를 지원할 것이다. 글로벌 칩 부족의 또 다른 승자는 반도체 장비 업체, 그리고 수요 업종의에서 칩 확보를 위한 강력한 협상력을 가진 시장 선도 기업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필요한 반도체를 확보할 수 없는 소형 자동차 업체, 소비자가전 회사 및 산업업종의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본다. 또 반도체 설계 업체(팹리스)들은 충분한 제조 능력을 확보할 수 없으며 파운드리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글로벌 기술 지출이 증가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이에 따라 반도체 산업은 추세 이상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믿는다. 이 부문에 기회가 풍부하다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주요 위험도 있다.

팬데믹의 억제는 자동차용 칩 수요를 포함한 글로벌 경제 활동의 회복을 가속화할 수 있으며, 이는 단기적 반도체 부족 사태를 장기화시킬 수 있다. 미·중 긴장 고조도 공급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중국 기술에 대한 정책 입장은 반도체 공급망에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자족을 향한 노력은 중장기적인 위험이며, 이는 경쟁 환경을 크게 바꿀 수 있다. 소재 및 부품의 부족 현상도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반도체를 수요하는 다른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