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산업찾기] 혈액암에만 효과 있다던 CAR-T, 고형암에도 효과낼 방법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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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은 적으면서도 효과는 큰 항암제로 주목받고 있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의 활용도를 높여줄 연구가 나왔습니다. CAR-T는 우리 몸의 강력한 면역세포인 T세포를 이용하는 세포치료제인데요, 환자의 T세포를 추출한 뒤 암세포 표면에 특이적으로 발생하는 항원에 결합하는 수용체를 발현시킵니다. 그럼 암세포만을 공격하는 강력한 CAR-T 치료제가 완성됩니다. 환자의 T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고, 한 번만 맞아도 완치 수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 스텝’ CAR-T 치료제,
암 항원에 친화도 낮은 수용체 먼저 발현시켜
단 문제점이라면 혈액암에서만 주로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3월 초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최초로 허가를 받은 노바티스의 CAR-T 치료제 ‘킴리아(성분명 티사젠렉류셀)’나 길리어드의 ‘예스카타(성분명 악시캅타진 실로류셀)’도 모두 혈액암이 대상입니다.
그 이유는 고형암의 경우 암세포 표면에서만 발생하는 암특이적 단백질(항원)이 드물어서입니다. CAR-T 치료제가 효과적으로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상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서만 균일하게 발현되는 항원이 존재해야 하는데요. 고형암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은 대부분 정상세포에서도 발현됩니다.
그런데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고형암 중 하나인 유방암, 난소암에 CAR-T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됐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공대와 핀란드 헬싱키대 공동연구진은 유방암 환자의 약 20%에서 나타나는 ‘사람표피성장인자수용체2(HER2)’ 과발현 현상을 이용했습니다.
HER2나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과발현은 여러 고형암종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돌연변이입니다. 하지만 정상세포의 표면에서도 상당수 발견되기 때문에 그간 CAR-T 치료제의 표적이 되지 못했죠. 연구진이 제안한 방법은 ‘투 스텝’ CAR-T 치료입니다. 초반의 CAR-T 세포에는 HER2와 결합력이 높은 CAR 대신 친화성이 낮은 ‘Notch’ 수용체를 발현시킵니다. Notch와 HER2가 결합하면 그제야 CAR이 T세포 표면에 발현되기 시작합니다. S자 그래프 그리며 고농도 암세포에서만
CAR-T 활동해
연구진은 헤모글로빈이 보여주는 산소해리곡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헤모글로빈은 4개의 단량체(헴)로 구성돼 있는데, 혈액을 돌아다니다 각각의 소단위에 산소가 결합합니다. 그런데 헴과 산소의 결합력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데요, 하나의 헴에 산소가 붙으면 2번째 헴에 붙는 산소의 양은 약 4배, 세 번째는 24배, 네 번째는 9배 정도 됩니다. 그렇다 보니 산소(입력값)가 선형의 그래프를 그리며 차례대로 헤모글로빈을 만나도, 산소와의 결합량(결과값)은 S자 모양의 그래프를 만들게 됩니다. 즉 초반에는 산소와의 결합이 많이 이뤄지지 않다가, 일정한 양 이상의 산소가 존재하게 되면 결합량이 급증하게 됩니다.
‘투 스텝’ CAR-T 역시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초반에는 HER2와 친화력이 낮은 Notch 수용체만 발현돼 있기 때문에 HER2의 농도가 낮은 정상세포에서는 CAR의 발현량이 매우 적습니다. 마치 산소량이 적은 곳에 있는 헤모글로빈처럼 말이죠. 하지만 일정 농도 이상의 HER2를 발현하는, 즉 암세포 주변에 가면 CAR의 발현량이 갑자기 늘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정상세포 조직은 공격하지 않고 암세포만 공격하게 됩니다.
실제 우리 몸에는 이와 유사하게 작용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사이토카인 중 하나인 ‘인터루킨-2(IL-2)’입니다. IL-2는 알파, 베타, 감마 등 세 가지 유형의 수용체와 결합하는데, 알파는 아주 낮은 친화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파 수용체와 IL-2가 결합하면 친화성이 높은 수용체를 발현시키는 ‘양의 피드백’ 관계를 가지고 있죠.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이 현상을 잘 이용하면 CAR-T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실제 마우스 모델에서 투 스텝 CAR-T 치료제를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HER2가 많이 발생한 암세포의 경우 눈에 띄게 종양의 크기가 줄어든 것을 확인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칼레 사크살레 헬싱키대 교수는 “현재 난소암 치료에 CAR-T가 사용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암세포가 저항성을 가지기 어려운 ‘다탄두 미사일’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가 실제 CAR-T 치료제에 적용될 수 있다면, 고형암 환자들에게도 하나의 치료법을 제안할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됩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투 스텝’ CAR-T 치료제,
암 항원에 친화도 낮은 수용체 먼저 발현시켜
단 문제점이라면 혈액암에서만 주로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3월 초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최초로 허가를 받은 노바티스의 CAR-T 치료제 ‘킴리아(성분명 티사젠렉류셀)’나 길리어드의 ‘예스카타(성분명 악시캅타진 실로류셀)’도 모두 혈액암이 대상입니다.
그 이유는 고형암의 경우 암세포 표면에서만 발생하는 암특이적 단백질(항원)이 드물어서입니다. CAR-T 치료제가 효과적으로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상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서만 균일하게 발현되는 항원이 존재해야 하는데요. 고형암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은 대부분 정상세포에서도 발현됩니다.
그런데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고형암 중 하나인 유방암, 난소암에 CAR-T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됐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공대와 핀란드 헬싱키대 공동연구진은 유방암 환자의 약 20%에서 나타나는 ‘사람표피성장인자수용체2(HER2)’ 과발현 현상을 이용했습니다.
HER2나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과발현은 여러 고형암종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돌연변이입니다. 하지만 정상세포의 표면에서도 상당수 발견되기 때문에 그간 CAR-T 치료제의 표적이 되지 못했죠. 연구진이 제안한 방법은 ‘투 스텝’ CAR-T 치료입니다. 초반의 CAR-T 세포에는 HER2와 결합력이 높은 CAR 대신 친화성이 낮은 ‘Notch’ 수용체를 발현시킵니다. Notch와 HER2가 결합하면 그제야 CAR이 T세포 표면에 발현되기 시작합니다. S자 그래프 그리며 고농도 암세포에서만
CAR-T 활동해
연구진은 헤모글로빈이 보여주는 산소해리곡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헤모글로빈은 4개의 단량체(헴)로 구성돼 있는데, 혈액을 돌아다니다 각각의 소단위에 산소가 결합합니다. 그런데 헴과 산소의 결합력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데요, 하나의 헴에 산소가 붙으면 2번째 헴에 붙는 산소의 양은 약 4배, 세 번째는 24배, 네 번째는 9배 정도 됩니다. 그렇다 보니 산소(입력값)가 선형의 그래프를 그리며 차례대로 헤모글로빈을 만나도, 산소와의 결합량(결과값)은 S자 모양의 그래프를 만들게 됩니다. 즉 초반에는 산소와의 결합이 많이 이뤄지지 않다가, 일정한 양 이상의 산소가 존재하게 되면 결합량이 급증하게 됩니다.
‘투 스텝’ CAR-T 역시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초반에는 HER2와 친화력이 낮은 Notch 수용체만 발현돼 있기 때문에 HER2의 농도가 낮은 정상세포에서는 CAR의 발현량이 매우 적습니다. 마치 산소량이 적은 곳에 있는 헤모글로빈처럼 말이죠. 하지만 일정 농도 이상의 HER2를 발현하는, 즉 암세포 주변에 가면 CAR의 발현량이 갑자기 늘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정상세포 조직은 공격하지 않고 암세포만 공격하게 됩니다.
실제 우리 몸에는 이와 유사하게 작용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사이토카인 중 하나인 ‘인터루킨-2(IL-2)’입니다. IL-2는 알파, 베타, 감마 등 세 가지 유형의 수용체와 결합하는데, 알파는 아주 낮은 친화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파 수용체와 IL-2가 결합하면 친화성이 높은 수용체를 발현시키는 ‘양의 피드백’ 관계를 가지고 있죠.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이 현상을 잘 이용하면 CAR-T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실제 마우스 모델에서 투 스텝 CAR-T 치료제를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HER2가 많이 발생한 암세포의 경우 눈에 띄게 종양의 크기가 줄어든 것을 확인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칼레 사크살레 헬싱키대 교수는 “현재 난소암 치료에 CAR-T가 사용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암세포가 저항성을 가지기 어려운 ‘다탄두 미사일’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가 실제 CAR-T 치료제에 적용될 수 있다면, 고형암 환자들에게도 하나의 치료법을 제안할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됩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