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多!] 110년 전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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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독립선언일이다. 항일투쟁 사상 최초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결의하며 낭독한 날이다. 100년 전이다.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일제 강점기에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다. 일본에 유학 중인 학생들이 중심이 되었다. 조선 청년독립단 대표 최팔용과 이광수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낭독했다. 학생들이 중심이 됐다. 의연한 청년들이다. 2.8 독립선언은 국내에 알려져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도화선이 됐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의 발화선은 하얼빈역에서 의연한 청년 안중근에서 비롯된다. 1909년 10월 26일 9시30분경 의장대 사열 10보 앞까지 뚜벅뚜벅 걸어갔다. 대담한 걸음이었다. 의연한 순간이었다. 탕! 탕! 탕! 브라우닝 권총 3발에 이토 히로부미가 무릎을 꿇는다. ‘코레아 우라!’ 를 목청껏 외친다, ‘코레아 우라!’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하얼빈역에 울려 퍼진 소리다.
110년 전 뤼순감옥에서 대한민국 참모중장 토마스 안중근의 죽음이 있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말하며 동양 평화론을 설파한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어머니이신 조 마리아는 장남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준 비단 수의를 입고 1910년 3월 26일 10시 형장의 이슬이 된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유묵과 책을 집필하며 31세 젊은 나이에 순국한다. 봄비 내리는 3월 여순 감옥 묘지에 침관 된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효창원에 가묘만 있을 뿐이다.
역사는 흐르고 또 다른 시작을 알린다.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신 분. 안중근 의사를 만나러 목멱산을 오른다. 목멱산 정상에 오르기 전 안중근 의사 상(像)이 우뚝 서 있다. 그 옆에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돌에 새겨져 있다. ‘장부가(丈夫歌)’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찰나이다. 대한민국 의군 중장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다. 두만강과 훈춘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삶을 살필 수 있는 시간여행이다.
사람을 포용하는 지혜로운 분. 안중근 의사를 생각한다. 110년 전 유언을 찾아 유묵으로 본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로움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그 목숨을 바치라는 말이다. 대한국인 안중근의 손도장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 국경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 생각을 멈추게 한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면 누구는 벽을 쌓고, 어떤 이는 풍차를 만든다.’ 그런데 문이 없는 벽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오늘도 길 위에 서서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본다. ‘나는 어느 길로 갈 것인가? ‘ 이 기쁜 날에 나의 길을 찾아본다.
그것도 ‘쉬운 길’이 아닌 ‘의미있는’ 길을 모색해본다.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의 발화선은 하얼빈역에서 의연한 청년 안중근에서 비롯된다. 1909년 10월 26일 9시30분경 의장대 사열 10보 앞까지 뚜벅뚜벅 걸어갔다. 대담한 걸음이었다. 의연한 순간이었다. 탕! 탕! 탕! 브라우닝 권총 3발에 이토 히로부미가 무릎을 꿇는다. ‘코레아 우라!’ 를 목청껏 외친다, ‘코레아 우라!’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하얼빈역에 울려 퍼진 소리다.
110년 전 뤼순감옥에서 대한민국 참모중장 토마스 안중근의 죽음이 있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말하며 동양 평화론을 설파한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어머니이신 조 마리아는 장남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준 비단 수의를 입고 1910년 3월 26일 10시 형장의 이슬이 된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유묵과 책을 집필하며 31세 젊은 나이에 순국한다. 봄비 내리는 3월 여순 감옥 묘지에 침관 된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효창원에 가묘만 있을 뿐이다.
역사는 흐르고 또 다른 시작을 알린다.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신 분. 안중근 의사를 만나러 목멱산을 오른다. 목멱산 정상에 오르기 전 안중근 의사 상(像)이 우뚝 서 있다. 그 옆에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돌에 새겨져 있다. ‘장부가(丈夫歌)’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찰나이다. 대한민국 의군 중장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다. 두만강과 훈춘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삶을 살필 수 있는 시간여행이다.
사람을 포용하는 지혜로운 분. 안중근 의사를 생각한다. 110년 전 유언을 찾아 유묵으로 본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로움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그 목숨을 바치라는 말이다. 대한국인 안중근의 손도장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 국경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 생각을 멈추게 한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면 누구는 벽을 쌓고, 어떤 이는 풍차를 만든다.’ 그런데 문이 없는 벽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오늘도 길 위에 서서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본다. ‘나는 어느 길로 갈 것인가? ‘ 이 기쁜 날에 나의 길을 찾아본다.
그것도 ‘쉬운 길’이 아닌 ‘의미있는’ 길을 모색해본다.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