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해 한용운의 생애 유일한 집이다. 택호를 심우장으로 정하고 그곳에서 11년 집필생활을 하며 삶을 마무리 했다. 나를 찾고 나라를 되찾으려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독립운동을 했다. 아쉽게도 독립을 보지 못한 채 그의 시구처럼 님은 갔다. 하지만 심우장은 86년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소를 찾듯 나를 찾고, 나라를 찾듯 역사를 찾은 곳이다. 3.1운동 100주년에 가족과 함께 심우장을 가고 싶다.

민족대표 33인 중 백용성과 한용운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만해 한용운은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에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라는 구절을 삽입하고 선언한다. 만천하가 만세소리에 깨어났다. 태화관에서, 탑골공원에서. 기념비각에서, 대한문앞에서, 남대문역에서, 경성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은 불꽃처럼 전국적으로 번졌다. 만해 한용운은 체포 후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을 선고 받는다. 출옥한 후에도 민족운동을 변함없이 펼쳤다.


오늘 당신은 어느 길을 가고 싶습니까?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