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칼럼]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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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새로 이사 온 집은 여러모로 티가 난다. 갈수록 예뻐진다. 집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정원에 꽃과 나무를 심고 새로이 단장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집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마당에 잔디를 새로 깔거나 텃밭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집을 보면 이사 온 사람의 취향을 쉽게 알 수 있다.
더러 흥미로운 집도 있다. 지나치게 장식(?)을 많이 하는 경우인데 아파트와 달리 주택은 작은 마당이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여하튼 밖에서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만큼 좁은 마당을 복잡하게 가득 채우는 것이다. 가령, 꽃과 나무는 물론 여기에 대형 조각상과 각종 대형 화분 그리고 조형물들을 빼곡히 세우는 것이다. 마치 이 모습을 보면 이사 오기 전 상상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다 하는 것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집 안 텃밭에 유실수를 많이 심었는데 그 기억을 재현하고자 필자도 마당에 유실수를 여럿 심었다. 살구나무, 매화나무, 자두나무, 보리수나무, 포도나무, 감나무, 앵두나무.
이 나무들을 묘목으로 심었을 때는 몰랐다. 몇 년 사이 나무가 자라 마당 전체를 그늘지게 해서 잔디가 말라 죽어갔다. 게다가 나무가 무성한 여름이면 좀 과장해 집을 뒤덮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보리수나무는 엄청난 속도로 자랐다. 동네 사람들이 필자 집을 가리켜 ‘보리수나무 집’이라고 부를 정도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나무 솎기다. 자두나무는 키워보니 자두열매를 따먹을 때는 좋았지만 나무줄기에 기름성분 수액이 흘러나와 땅과 옆 나무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자두나무는 잘라내고 살구나무는 뒷마당으로 옮겼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넓혀 바람이 통하게 하고 마당에는 햇빛이 고루 비치게 한 것이다.
올해 고3수험생 아들을 둔 엄마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았다. 청소년 상담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마도 20대 아들을 둔 이력(?)을 후히 평가한 것 같다. 상담 내용은 이렇다. 1남 1녀를 둔 이은미씨는 자녀들이 어릴 때는 전업 주부로 살았다. 그러다 다시 어렵게 일을 시작했는데 아들이 고3 수험생이 되니 심적인 부담이 커진 것이다.
“아들이 고3인데 엄마 손길을 자꾸 필요로 해요.”
“일을 그만 두어야할지 고민이에요!”
“남편이 직접 말은 안 하는데 은근히 아들에게 신경 쓰길 바라는 것 같아요!”
겪었던 일이라서 공감이 많이 갔다. 워킹 맘으로 살다가 이은미씨와 마찬가지로 아들이 고3때 건강상 의사의 권유로 일을 잠시 쉬었다. ‘그동안 일하느라 아들에게 못해 준 것’ 다 해 주고 싶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배달음식 아닌 엄마가 만든 밥상을 해 주는 식이었다. 그동안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오던 아들이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아들, 언제와?”
“아들, 밥 먹고 오니?”
“아들, 오늘 영화 보러 갈까?”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 이상으로 아들을 간섭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인 사이에서는 사랑이 지나쳐 집착이 된다더니. 부모가 자녀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을 알았다.
필자가 키우는 유실수도 마찬가지다. 묘목은 심겨진 땅에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묘목 주변을 살펴 햇빛이 들게끔 옆 나무 가지들을 잘라 주어야 하고 최소한 그 자리에서 한 해가 묵을 때까지는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여름에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어 말라죽지 않게 하고 겨울에는 지푸라기로 몸통을 싸서 보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정성에도 완급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묘목에 절대적으로 물이 중요하다. 하지만 물도 지나치게 주면 뿌리가 썩어 죽는다. 햇빛도 마찬가지다. 햇빛이 있어야만 성장하지만 햇빛도 강하게 받으면 어떤 묘목이라도 타들어 죽게 되는 것이다. 결국 ‘과유불급’ 이로운 것도 지나치면 해로운 것이다. 원하던 원치 않던 말이다.
자녀든 나무든 때가 되면 다 자란다. 막상 그 때가 되면 알게 되고 느끼는 게 참 많다. 유실수 묘목을 심을 때 다 자란 모습 즉 큰 그림을 보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작은 마당에 심을 줄만 알았지. 나무가 자라서 마당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사랑에도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자녀 사랑은 더 그렇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어릴 때는 아낌없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도 ‘품에 안기는 맛’으로 나름 키우는 행복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면 ‘사랑’이라고 마구 주면 오히려 ‘간섭’이라고 말하는 자녀에게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중년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빈 둥지 증후군’이 그 대표적인 예다.
‘빈 둥지 증후군’은 가정주부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회의를 품게 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주로 고3 이후 대학생이 된 자녀를 둔 엄마에게서 잘 나타난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이 없어진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다. 마치 텅 빈 둥지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어 정신적 위기에 빠지는 일을 말한다. 같은 말로 ‘공소 증후군’이 있다.
그렇다면 이 ‘빈 둥지 증후군’을 지혜롭게 넘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일을 갖는 것이다. 여기서 일이 직장인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취미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버킷리스트도 포함된다. 바로 관심을 자녀에게서 나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주는 입장>이 아니라 <받는 입장>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인생은 <자식>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이다. ‘ㄱ’을 ‘ㄴ’으로만 옮기면 된다. 이 말을 우리네 ‘고3 엄마들’ 에게 전하고 싶다. Ⓒ이지수20190219(jslee3082@naver.com)
더러 흥미로운 집도 있다. 지나치게 장식(?)을 많이 하는 경우인데 아파트와 달리 주택은 작은 마당이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여하튼 밖에서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만큼 좁은 마당을 복잡하게 가득 채우는 것이다. 가령, 꽃과 나무는 물론 여기에 대형 조각상과 각종 대형 화분 그리고 조형물들을 빼곡히 세우는 것이다. 마치 이 모습을 보면 이사 오기 전 상상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다 하는 것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집 안 텃밭에 유실수를 많이 심었는데 그 기억을 재현하고자 필자도 마당에 유실수를 여럿 심었다. 살구나무, 매화나무, 자두나무, 보리수나무, 포도나무, 감나무, 앵두나무.
이 나무들을 묘목으로 심었을 때는 몰랐다. 몇 년 사이 나무가 자라 마당 전체를 그늘지게 해서 잔디가 말라 죽어갔다. 게다가 나무가 무성한 여름이면 좀 과장해 집을 뒤덮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보리수나무는 엄청난 속도로 자랐다. 동네 사람들이 필자 집을 가리켜 ‘보리수나무 집’이라고 부를 정도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나무 솎기다. 자두나무는 키워보니 자두열매를 따먹을 때는 좋았지만 나무줄기에 기름성분 수액이 흘러나와 땅과 옆 나무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자두나무는 잘라내고 살구나무는 뒷마당으로 옮겼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넓혀 바람이 통하게 하고 마당에는 햇빛이 고루 비치게 한 것이다.
올해 고3수험생 아들을 둔 엄마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았다. 청소년 상담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마도 20대 아들을 둔 이력(?)을 후히 평가한 것 같다. 상담 내용은 이렇다. 1남 1녀를 둔 이은미씨는 자녀들이 어릴 때는 전업 주부로 살았다. 그러다 다시 어렵게 일을 시작했는데 아들이 고3 수험생이 되니 심적인 부담이 커진 것이다.
“아들이 고3인데 엄마 손길을 자꾸 필요로 해요.”
“일을 그만 두어야할지 고민이에요!”
“남편이 직접 말은 안 하는데 은근히 아들에게 신경 쓰길 바라는 것 같아요!”
겪었던 일이라서 공감이 많이 갔다. 워킹 맘으로 살다가 이은미씨와 마찬가지로 아들이 고3때 건강상 의사의 권유로 일을 잠시 쉬었다. ‘그동안 일하느라 아들에게 못해 준 것’ 다 해 주고 싶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배달음식 아닌 엄마가 만든 밥상을 해 주는 식이었다. 그동안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오던 아들이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아들, 언제와?”
“아들, 밥 먹고 오니?”
“아들, 오늘 영화 보러 갈까?”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 이상으로 아들을 간섭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인 사이에서는 사랑이 지나쳐 집착이 된다더니. 부모가 자녀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을 알았다.
필자가 키우는 유실수도 마찬가지다. 묘목은 심겨진 땅에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묘목 주변을 살펴 햇빛이 들게끔 옆 나무 가지들을 잘라 주어야 하고 최소한 그 자리에서 한 해가 묵을 때까지는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여름에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어 말라죽지 않게 하고 겨울에는 지푸라기로 몸통을 싸서 보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정성에도 완급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묘목에 절대적으로 물이 중요하다. 하지만 물도 지나치게 주면 뿌리가 썩어 죽는다. 햇빛도 마찬가지다. 햇빛이 있어야만 성장하지만 햇빛도 강하게 받으면 어떤 묘목이라도 타들어 죽게 되는 것이다. 결국 ‘과유불급’ 이로운 것도 지나치면 해로운 것이다. 원하던 원치 않던 말이다.
자녀든 나무든 때가 되면 다 자란다. 막상 그 때가 되면 알게 되고 느끼는 게 참 많다. 유실수 묘목을 심을 때 다 자란 모습 즉 큰 그림을 보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작은 마당에 심을 줄만 알았지. 나무가 자라서 마당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사랑에도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자녀 사랑은 더 그렇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어릴 때는 아낌없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도 ‘품에 안기는 맛’으로 나름 키우는 행복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면 ‘사랑’이라고 마구 주면 오히려 ‘간섭’이라고 말하는 자녀에게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중년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빈 둥지 증후군’이 그 대표적인 예다.
‘빈 둥지 증후군’은 가정주부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회의를 품게 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주로 고3 이후 대학생이 된 자녀를 둔 엄마에게서 잘 나타난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이 없어진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다. 마치 텅 빈 둥지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어 정신적 위기에 빠지는 일을 말한다. 같은 말로 ‘공소 증후군’이 있다.
그렇다면 이 ‘빈 둥지 증후군’을 지혜롭게 넘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일을 갖는 것이다. 여기서 일이 직장인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취미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버킷리스트도 포함된다. 바로 관심을 자녀에게서 나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주는 입장>이 아니라 <받는 입장>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인생은 <자식>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이다. ‘ㄱ’을 ‘ㄴ’으로만 옮기면 된다. 이 말을 우리네 ‘고3 엄마들’ 에게 전하고 싶다. Ⓒ이지수20190219(jslee308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