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왕산은 험준한 바위산이다. 화강암 바위들이 소나무 숲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필운대에서 시작한 인왕산 자락은 치마바위와 기차바위를 지나 창의문에서 멈춘다. 창의문까지 높지 않은 바위산이 완만하게 성곽으로 이어져 있다. 인왕산 자락 옛 동네 이름들은 새롭지만 정답다. 백운동은 과연 어디일까?


백운동계곡 물이 바로 이 청계천의 원류이자 본류이다. 인왕산에서 도성안으로 3개의 계곡물이 흘렀다. 청풍계곡과 백운동계곡이 백운동천 물길의 시작이었다. 청풍계와 백운동이 합쳐져 청운동이라는 이름도 유래하였다. 백세청풍 바위 앞에 복개된 물길 속에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귀전을 맴돈다. 물길 따라 청운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다리의 주춧돌들이 여러 개 남아 있어 이곳이 큰 물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송강 정철의 집터가 있던 자리로 백운동천이 흘렀던 별천지다.
계곡물이 흐르는 개천을 사이에 두고 겸재 정선의 집터도 있다. 경복고등학교 교정에 위치한 집터이자 작업공간이다. 인왕산 3개의 봉우리와 백악산 대은암과 청송당이 보이는 명당자리다. 수백 개의 먹과 붓이 닿도록 진경산수를 그렸던 곳이다. 이곳은 유란동이라 불리었다. 글이 나오고 그림이 그려질 듯 탁 트인 공간이다. 효자동 삼거리로 가니 다리의 흔적이 있다.

경복궁 서쪽에서 광화문 광장을 끼고 청계천으로 가는 가장 긴 물줄기의 흔적이 숨겨져 있다.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 옥류동천, 이름 속 구름 타고 빗줄기가 내릴듯한 백운동천이 우리곁에 있었다. 옥류동천과 백운동천 물길이 만나는 지점에 금청교(禁淸橋)도 최근까지 있었다. 홍예가 3개인 도성안 규모가 큰 다리다. 홍예는 무지개다리다. 백운동계곡은 수성동계곡 보다도 더 깊은 계곡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산이 있고 계곡이 있다. 한여름이 되니 물소리와 계곡이 그리워진다. 비가 오면 가까운 산을 가보자. 빌딩 숲속 차 소리와 경쟁의 늪에 빠진 고함소리에서 잠시 벗어나 보자. 광화문 광장에서 걸어서 10분이면 청량한 계곡물이 있다.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지친 우리를 위로 해 준다. 여기는 하얀 구름이 잠시 머무는 도심 속 산동네, 백운동계곡이다.
이런 말이 있다. <개울에 자갈이 없으면 시냇물은 노래하지 않는다.> 여름에 비 소리가 없으면 여름이 아니다. 백운동계곡 길을 호젓하게 걸어 보자. 그리고 계곡이 합창하는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자.
비 오는 여름, 백운동계곡에 가보실까요?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