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多!] 걷지 않는 길은 곧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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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多!] 걷지 않는 길은 곧 사라진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4/0Q.26025493.1.jpg)
효창원은 230여 년 전 도성 밖 한강이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었다. 용이 한강으로 향한다는 용산(龍山)이다.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가장 아끼던 장자를 가슴에 묻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수원 현륭원에 묻었듯이 아들 문효세자(文孝世子)를 효창원에 묻었다.
![[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多!] 걷지 않는 길은 곧 사라진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4/0Q.26025494.1.jpg)
1894년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효창원 안 만리창(萬里倉)에 야영과 숙영하며 군사기지로 사용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구용산고지(舊龍山高地)라 불리며 병참기지로 활용했다. 1924년 8만1천460평을 공원 용지로, 순환도로와 공중화장실로 변형해 사용했다. 1944년에 문효세자의 묘를 고양 서삼릉(西三陵)으로 이장하며 효창원이 효창공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직단이 사직공원으로, 삼청단이 삼청공원, 장충단이 장충공원으로 격하됐다.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多!] 걷지 않는 길은 곧 사라진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4/0Q.26025495.1.jpg)
![[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多!] 걷지 않는 길은 곧 사라진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4/0Q.26025496.1.jpg)
이곳은 독립운동의 정신적인 표상이다. 그리고 살아 숨쉬는 역사적인 기념 공간이다. 독립운동가 7인을 너머 1만 5천 여 독립운동가가 이제는 효창원에 함께 추모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여 효창원 묘역에서 모든 일상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공원과 묘역의 경계가 없는 공간, 재미있는 역사에서 의미 있는 체험공간과 추모공간이 되길 바란다.
![[최철호의 길 위에서 찾多!] 걷지 않는 길은 곧 사라진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4/0Q.26025497.1.jpg)
god의 ‘길’ 이란 노래 노랫말 첫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길은 걸어야 길이다.
‘걷지 않는 길은 곧 사라진다.’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