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지난 2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직후 뉴욕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아마존, 알리바바와 경쟁하기 위한 것”이라고 상장 이유를 밝혔다. 싱가포르 진출 결정은 글로벌 e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미국, 중국의 강자와 ‘한국형 모델’로 겨뤄보겠다는 전략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쿠팡, 70조 동남아 시장서 알리바바와 격돌

깃발 올린 쿠팡의 해외시장 공략

쿠팡은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오래전부터 공들여왔다. 그동안은 해외 상품 공급망을 확충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해 9월 쿠팡 글로벌 스토어팀이 중국 선전에서 ‘제1회 쿠팡 차이니스 셀러 콘퍼런스’를 연 것도 공급망 확보 차원이었다.

싱가포르 e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제조업 기반이 없어 공산품 대부분을 중국, 미국 등에서 수입한다”며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동남아 온라인 쇼핑 시장에 진출하려면 해외 상품 공급망을 확보하는 게 필수”라고 설명했다.

쿠팡이 2017년 도입한 로켓직구(3일 만에 배송)는 국내외 공급망을 동시에 늘리는 효과를 거뒀다. 쿠팡은 8만여 개 미국 상품에 한정했던 로켓직구 서비스를 올초 중국으로 확대했다. 쿠팡이 보유한 수백만 종의 한국 상품도 쿠팡만이 갖춘 경쟁력이다.

쿠팡이 첫 번째 해외 공략지로 싱가포르를 택한 건 인구 6억5000만 명에 달하는 동남아 시장에 진입할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베인&컴퍼니 등이 펴낸 ‘e코노미 2020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 e커머스 거래액은 총 620억달러(약 70조원)로 전년 대비 63% 늘었다. 2025년엔 1720억달러(약 193조원)로 급증할 전망이다.

싱가포르 e커머스업계 ‘빅3’인 쇼피, 라자다, 큐텐도 싱가포르에 지역본부를 두고 동남아 전역에서 판매 중이다. 알리바바그룹은 2016년 동남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라자다를 인수하며 한발 먼저 진출해 있다. 2030년까지 이용자를 3억 명으로 확대하겠다는 게 알리바바의 목표다. 동남아 시장에서 쿠팡과 알리바바의 대결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곳간’ 여유로워진 쿠팡

쿠팡은 도심 근처에 물류 거점을 마련해 빠른 배송으로 승부하는 유통 전략이 동남아 시장에서도 통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싱가포르만 해도 1위 온라인 쇼핑몰인 쇼피가 고지한 배송기간은 식품 기준 1~3영업일. 중국 등 해외에서 배송하는 공산품은 최소 1주일, 길게는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빠른 배송에 익숙한 현지 한인들 사이에선 “주문한 뒤 한동안 잊고 살아야 한다”는 혹평이 나올 정도다.

글로벌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미국 등 글로벌 투자자들이 쿠팡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건 아시아 등 밀집형 도시에 특화된 물류 시스템을 쿠팡이 자체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라며 “자율주행 배송 등 쿠팡이 실현하려는 종착점이 미래형 모빌리티 구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싱가포르는 이를 실험하기 위한 최적지”라고 말했다.

뉴욕증시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 여력과 영업환경 개선이 쿠팡의 해외시장 공략 원동력이다. 쿠팡은 지난해 영업적자를 냈지만 코로나19 방역비용 3000억원가량을 제외하면 충분히 흑자를 낼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쿠팡의 현금흐름이 지난해 플러스로 돌아선 데 주목한다. 2012년부터 매년 수천억원을 들여 투자한 물류센터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고 있다. 뉴욕증시 상장으로 약 5조원의 현금이 유입된 데다 한국 내 상황도 대폭 호전되면서 해외 공략에 본격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동휘 기자/싱가포르=이태호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