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에 있는 4932가구 규모 대단지 아파트에서 ‘택배대란’이 현실화됐다. 아파트 측이 지난 1일부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 출입을 막자 택배기사들이 아파트 입구까지만 배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입구까지만 배송...800개 택배산 수북

14일 고덕동 A아파트 입구에는 800여개에 달하는 택배 상자가 수북이 쌓였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오늘부터 물품을 아파트 단지 앞까지만 배송하고 찾아오는 입주민 고객들에게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이 아파트가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 출입을 막은 것은 지난 1일. 단지가 ‘차 없는 아파트’로 설계됐다는 이유에서다. 아파트 관리지원센터는 “택배차량이 지상으로 들어올 경우 사고가 날 수 있고, 보도블록도 훼손된다”고 설명했다.

택배차가 단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택배기사들은 입구에서부터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하거나,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는 저탑차량으로 교체해야 한다. 해당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제한 높이는 2.3m로, 일반 택배차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우리 아파트에만"

아파트 입주자회의는 1년 전부터 꾸준히 택배차 문제를 협의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10시 택배노조에 보낸 입장문에서 "택배사와 1년 전부터 지하주차장 운행 및 배송을 위한 협의를 해왔다"며 "CJ대한통운 배송담당팀과의 협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택배 노조"라고 주장했다.

또 택배차의 지상 출입을 막는 게 해당 아파트뿐만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입주자회의는 "고덕지구의 모든 공원화 아파트에서 저상차량을 이용해 지하주차장으로 배송한다"며 "왜 우리 아파트 단지에만 이의를 제기하고 협상을 요구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택배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입주자회의의 의견을 반박했다. 노조는 "기사는 배제하고 택배사와 이야기해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뿐"이라며 "택배사와 기사는 전형적인 '갑을관계'이므로 택배사가 저탑으로 교체하라고 요구하면 기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저탑차로 교체하면 배송기사의 허리와 손목, 발목에 심각한 손상을 야기해 노동을 계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 택배차는 화물실 높이가 180㎝로 허리를 펴고 작업할 수 있지만, 저탑차는 높이가 127㎝ 수준이다. 물건을 싣고 내리기 위해선 허리를 구부린 채 일해야 한다.

입주민 "택배 망가지면 책임 질거냐"

이날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입주민들은 거칠게 항의했다. 작년에 입주했다는 70대 A씨는 "단지 내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택배차가 지상으로 다니게 놔두냐"며 "입주 때부터 차 없는 단지로 알고 입주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입주민인 B씨는 "택배를 밖에 쌓아놨다가 물건에 벌레가 들어가거나, 망가지기라도 하면 책임 질거냐"며 택배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택배차의 지상 통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민도 있다. 이날 아이를 데리고 단지를 산책하던 주민 C씨는 "택배차가 지상으로 다니는 걸 막아서 이렇게 싸울 일인가 싶다"며 "집 앞으로 택배를 받으려면 택배차가 단지 안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 택배 대란이 이 아파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8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도 택배차량의 진입을 막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국토교통부는 이 일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자 2019년 1월부터 지상공원형 아파트에 대해 지하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으로 높일 것을 의무화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고덕동 아파트는 2016년부터 건설해 바뀐 규칙을 적용받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택배노조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택배가 국민들에게 더욱 필수적인 서비스가 됐다"며 "이를 수행하는 택배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