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열풍을 만든 ‘소프트파워’는 인문학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손에 쥔 문화적·인문학적 자산의 가치가 높은데 이걸 공부해야 할 대학 인문학과부터 존속이 어려운 형편이죠. 이럴수록 전국의 인문학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위행복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장(사진)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대학에서 인문학과들이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는 한국인문학총연합회, 한국사회과학협의회, 인문사회 분야의 대학 학장협의회가 모여 지난달 30일 출범한 국내 최대 인문·사회계열 학술단체다. 각자 학문별로 나뉘어 있던 인문사회계열 단체들이 ‘인문사회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친 것이다. 한국인문학총연합회장을 지내고 한양대 중국학과에 재직 중인 위행복 교수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위 회장은 각기 다른 단체들이 뭉치기 시작한 것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공통된 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자연계열 학생보다 취업에 불리한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이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교육부가 공개한 2019년 대졸자 취업률을 보면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이 56.2%로 모든 계열 중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위 회장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인문학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생활방식이 빠르게 바뀌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지만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아동학대 문제, 환경문제, 빈부격차가 더욱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죠. ‘지속가능한 성장’ ‘포용성장’ 같은 비전이 단순한 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인문학이 제도와 사람들의 의식 개선을 이끌어야만 합니다.”

문화산업적 관점에서도 인문학의 위상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주장했다. K팝, BTS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한국 대중문화가 더욱 발전하려면 한국 문화가 지닌 강점을 발굴해내야 하는데 이를 인문사회학이 도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 회장은 “‘버닝썬’ 사건은 인기스타에만 기댔을 때 한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며 “한국 전통문화와 민주화, 고도 성장 역사에도 외국인들의 관심이 큰 만큼 이를 한류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위 회장은 현재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체계적인 인문·사회학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정부가 지원하는 국가연구개발 예산 27조원 중 인문사회학에 쓰이는 예산은 2500억원 내외로 전체의 1% 남짓에 불과한 실정이다. 위 회장은 “국가급 학술자문회의 설치를 정부에 건의하고, 체계적인 학술 지원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며 “비인기 학과들도 필수교육 역량은 갖출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