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한국 산업이 침탈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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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우리 산업을 쥐락펴락
문제의식 하나 없는 정부
미·유럽 '탄소중립' 의도 뻔해
제조업 통째로 갖다 바칠 판
AI도 美·中에 예속될 우려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경영과학박사
문제의식 하나 없는 정부
미·유럽 '탄소중립' 의도 뻔해
제조업 통째로 갖다 바칠 판
AI도 美·中에 예속될 우려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경영과학박사
문재인 대통령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전기차 배터리 분쟁 종식 합의에 “참으로 다행”이라고 했다. SNS에서 “경쟁을 하면서 동시에 신뢰를 기반으로 협업해 나가는 게 국익과 개별 회사의 장기적 이익에 모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지식재산권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다. 문 대통령은 “정부도 전략산업에서 생태계와 협력 강화의 계기가 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생태계와 협력의 바탕이 지재권 존중에 있다는 걸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두 기업의 싸움이 부끄럽다고 했다. 정 총리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만약 두 기업이 국내에서 다퉜다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내린 수준의 판결이 나왔을까. ‘배상금 2조원+α(미공개)’란 합의가 가능했을까. 판결 수준도 배상 금액도 절대 불가능하다. 지재권 소송 당사자들이 왜 한국 법원과 중재를 거부하고 미국에 가서 끝장을 봐야 하는지, 정부는 생각해 봤나. 국내에서는 지재권 보호와 분쟁 해결에 기대를 접었다는 것이다. 총리가 뭐가 부끄러운 건지 분간조차 못하는 나라가 됐다.
흔들리는 건 지재권만이 아니다. 한국 산업이 침탈당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가경제위원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불려갔는데도 정부는 말이 없다. 반도체로 중국을 때려 견제하겠다는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에 뭘 요구했는지 뻔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놓고 말하고,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말을 전하는 통로를 바꾼 것뿐이다. 법 위에 있다는 중국 공산당은 더 날뛸 게 분명하다. 이런 현실에 정부가 침묵만 하라고 국민과 기업이 세금을 내는 건 아닐 것이다. 필요할 땐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땐 끼어드는 정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운 판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탄소중립’에 장단 맞추는 속내도 수상하다. 코로나에 당했다고 생각하는지, 국내 생산망을 확충하고 외국 기업도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옮기라고 압박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를 활용하려는 속셈 같다. 기후변화 대응이 보호무역주의 무기로 둔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에 탈원전 완장을 채운 것처럼 환경부에 탄소중립 완장을 채워 밀어붙일 태세다. 국내 에너지 기업들이 “너무 뒤처져도 너무 앞서 나가서도 안 된다”며 ‘타이밍론’을 호소하고 있다. 기업이 늦게 대응해 도태당해도 안 되지만, 정부가 일방적 규제로 나서면 기업이 다 죽을 것이란 얘기다.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의 계산법은 간단하다. 국내 배출 탄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 기업만 정리하면 된다는 식이다. 제조업도 모조리 접어야 할 판이다. 철강 화학 등 기초소재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부품까지 모두 영향권이다. 포스코부터 삼성전자까지 문을 닫거나 밖으로 나가면 한국 경제는 어찌 되겠나. 말이 쉬워 ‘대체’ ‘순환’ ‘전환’ ‘효율’이지, 여기엔 엄청난 가정과 전제가 있다. 혁신 공정·기술의 조기 상용화, 그린수소 등 인프라의 충분한 공급과 적정가격 보장이다. 산업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우습게 안다는 게 환경주의자들의 치명적인 오류다.
탄소중립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환경이냐 산업이냐’ 양자택일이 아니라 둘 다 지켜낼 ‘다목적함수’를 풀 능력을 정부가 갖고 있느냐를 묻고 있다. ‘원전이냐 재생이냐’ 이분법을 들이대며 탈원전으로 질주한 단세포 정부가 또 무슨 일을 벌일지 걱정이다.
인공지능(AI) 육성도 그렇다. 미국이 중국을 의식해 벌이는 행보는 비장하다. “AI 연구개발(R&D) 예산을 매년 두 배로 늘려라.” “이민법을 동원해서라도 중국 두뇌를 빼내라.” “공무원을 AI 교육으로 무장시켜라.” 미국 AI 국가안보위원회 보고서의 골자다. 두뇌 유출을 방치하고 인재 유입을 막는 한국 정부는 위기감이 있는가.
AI 활용을 말하지만 중국에도 없는 규제를 들이대고, 연구는 미국에 무임승차하는 식으로 AI 강국이 될 수 있을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AI는 잡(job) 킬러”라고 호도하던 제1야당도 기대할 게 없다. 미래를 광내는 수단쯤으로 여기는 정치가 산업을 망치기로 작정한 형국이다. 이대로 가면 ‘산업 주권’ 상실은 시간문제다.
ahs@hankyung.com
정세균 국무총리는 두 기업의 싸움이 부끄럽다고 했다. 정 총리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만약 두 기업이 국내에서 다퉜다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내린 수준의 판결이 나왔을까. ‘배상금 2조원+α(미공개)’란 합의가 가능했을까. 판결 수준도 배상 금액도 절대 불가능하다. 지재권 소송 당사자들이 왜 한국 법원과 중재를 거부하고 미국에 가서 끝장을 봐야 하는지, 정부는 생각해 봤나. 국내에서는 지재권 보호와 분쟁 해결에 기대를 접었다는 것이다. 총리가 뭐가 부끄러운 건지 분간조차 못하는 나라가 됐다.
흔들리는 건 지재권만이 아니다. 한국 산업이 침탈당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가경제위원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불려갔는데도 정부는 말이 없다. 반도체로 중국을 때려 견제하겠다는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에 뭘 요구했는지 뻔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놓고 말하고,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말을 전하는 통로를 바꾼 것뿐이다. 법 위에 있다는 중국 공산당은 더 날뛸 게 분명하다. 이런 현실에 정부가 침묵만 하라고 국민과 기업이 세금을 내는 건 아닐 것이다. 필요할 땐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땐 끼어드는 정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운 판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탄소중립’에 장단 맞추는 속내도 수상하다. 코로나에 당했다고 생각하는지, 국내 생산망을 확충하고 외국 기업도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옮기라고 압박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를 활용하려는 속셈 같다. 기후변화 대응이 보호무역주의 무기로 둔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에 탈원전 완장을 채운 것처럼 환경부에 탄소중립 완장을 채워 밀어붙일 태세다. 국내 에너지 기업들이 “너무 뒤처져도 너무 앞서 나가서도 안 된다”며 ‘타이밍론’을 호소하고 있다. 기업이 늦게 대응해 도태당해도 안 되지만, 정부가 일방적 규제로 나서면 기업이 다 죽을 것이란 얘기다.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의 계산법은 간단하다. 국내 배출 탄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 기업만 정리하면 된다는 식이다. 제조업도 모조리 접어야 할 판이다. 철강 화학 등 기초소재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부품까지 모두 영향권이다. 포스코부터 삼성전자까지 문을 닫거나 밖으로 나가면 한국 경제는 어찌 되겠나. 말이 쉬워 ‘대체’ ‘순환’ ‘전환’ ‘효율’이지, 여기엔 엄청난 가정과 전제가 있다. 혁신 공정·기술의 조기 상용화, 그린수소 등 인프라의 충분한 공급과 적정가격 보장이다. 산업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우습게 안다는 게 환경주의자들의 치명적인 오류다.
탄소중립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환경이냐 산업이냐’ 양자택일이 아니라 둘 다 지켜낼 ‘다목적함수’를 풀 능력을 정부가 갖고 있느냐를 묻고 있다. ‘원전이냐 재생이냐’ 이분법을 들이대며 탈원전으로 질주한 단세포 정부가 또 무슨 일을 벌일지 걱정이다.
인공지능(AI) 육성도 그렇다. 미국이 중국을 의식해 벌이는 행보는 비장하다. “AI 연구개발(R&D) 예산을 매년 두 배로 늘려라.” “이민법을 동원해서라도 중국 두뇌를 빼내라.” “공무원을 AI 교육으로 무장시켜라.” 미국 AI 국가안보위원회 보고서의 골자다. 두뇌 유출을 방치하고 인재 유입을 막는 한국 정부는 위기감이 있는가.
AI 활용을 말하지만 중국에도 없는 규제를 들이대고, 연구는 미국에 무임승차하는 식으로 AI 강국이 될 수 있을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AI는 잡(job) 킬러”라고 호도하던 제1야당도 기대할 게 없다. 미래를 광내는 수단쯤으로 여기는 정치가 산업을 망치기로 작정한 형국이다. 이대로 가면 ‘산업 주권’ 상실은 시간문제다.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