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규칙 해치는 과잉 규제 봇물
글로벌 경제 회복 흐름 탈 수 있겠나"
차은영 <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
작년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에서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것과 비교하며 K방역을 자화자찬했지만 한국의 백신접종률은 2%에 불과하다. 항공기 취항이 전면 금지됐던 영국의 백신접종률도 47%를 넘어섰다. 대책 없이 무조건 경제 활동을 자제하라는 규제만으로 일관했던 한국과 달리 선진국들은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1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억눌려왔던 글로벌 경제 활동의 탄력이 제대로 발휘될 시기에 신성장 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풀린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부양책이 가져올 골디락스 기회에 편승하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도 경쟁력을 갖추고 뛰어들어야 하는데, 각종 규제에 발목 잡혀 국가적 경쟁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시대착오적 과잉 규제가 산업과 국가 경제에 어떤 장기적 폐해를 가져오는가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역사적 사례가 1865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만들어져 30년 동안 지속됐던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 ‘붉은 깃발법’이다.
당시 증기 자동차 출현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마차 업자 항의가 거세지고, 마차 사업을 보호하고 마부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자동차를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게 됐는데, 그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없다. 한 대의 자동차에 운전사, 기관원, 기수 3명을 고용하도록 했고, 기수는 마차를 타고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55m 앞에서 자동차를 선도해야 한다. 자동차 속도를 마차보다 느리도록 최고 속도를 시내에서 시속 3.2㎞, 시외에서는 시속 6.4㎞로 제한했다.
자동차가 마차보다 느리게 가야 한다는 억지를 입법화한 그 당시 정치인 행태를 보면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말보다 천천히 가야만 하는 자동차를 구매할 소비자가 몇이나 됐을까. 영국이 자동차를 가장 먼저 만들고도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자동차산업 주도권을 독일, 프랑스, 미국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붉은 깃발법 같은 어리석은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
주택 가격 안정을 목표로 한다면서 되레 공급을 감소시키는 부동산 규제를 양산한 결과 주택 가격의 폭등을 초래했다. 일자리만큼은 확실하게 늘린다면서 반시장적 노동 규제를 밀어붙여, 정규직 일자리가 195만 개 줄어들고 비정규직만 200만 명 넘게 증가했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의 2017년 자료에 의하면 기술 유출·탈취 피해 유형은 경쟁사로의 기술 유출이 42%로 가장 많았고, 대기업의 기술 탈취는 0%였다. 기술자료 유출·유용 혐의를 받는 원청기업 비율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더라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규제다. 분쟁 리스크로 인해 기존 거래 기업을 바꾸려는 동기가 감소함에 따라 새로운 중소기업의 진입이 어렵고 해외로 거래처를 변경할 가능성이 증가한다. 중소기업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경쟁적으로 시장의 규칙을 해치는 새 법안을 졸속으로 쏟아내고 있다. ‘기업규제 3법’,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징벌 3법’ 등 설익은 과잉 규제들이 제대로 된 심의와 숙고 없이, 위헌 소지까지 감수하면서 통과될 처지다.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는 것이 못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