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조명 디자이너 고기영 대표
어둠을 디자인하는 빛의 지휘자
고기영 비츠로앤파트너스 대표(사진)는 국내 1세대 조명 디자이너다. 조명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부터 시작해 지난 30여 년간 건축가들의 작업을 이해하고 빛낼 수 있는 조명 디자인을 해왔다.
고 대표는 경복궁 마스터플랜, 광안대교·부산항 대교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강릉 경관(景觀) 조명 등 국내 굵직한 조명 작업을 도맡아 했다. 안도 다다오의 한화 인재경영원, 경기 안양 알바루 시자 홀 등 유명 건축가들의 공간에도 조명 디자인으로 참여했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벽 자체에 LED를 심어 아티스트 줄리언 오피의 작품을 미디어파사드로 구현한 것도 고 대표다.
고 대표는 어둠을 밝히는 도구로만 생각되던 조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88올림픽, 2002년 월드컵 등 국가 행사를 거치면서 바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밝은 상황보다 어두운 상황에서 기억이 훨씬 더 강렬하게 남는다”며 “뉴욕 맨해튼, 라스베이거스, 파리 등 야경이 멋진 해외 도시들이 알려지면서 우리도 그런 야경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고 전했다.
또한 빛만큼 사람의 심리를 지배하는 감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섯 가지 감각 중 70~80% 비중을 차지하는 건 시각인데, 그 시각은 빛을 통해 구현이 가능하다”며 “깜깜해서 무서울 때 등대가 되는 빛은 든든한 가이드 역할을 하고, 너무 많은 강렬한 밝은 빛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사람의 심리를 움직이는 빛을 통해 같은 공간임에도 전혀 다른 상황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조명 디자인에는 단순 색채만이 아니라 음악처럼 스토리와 흐름이 느껴진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피아니스트 지망생이었지만, 고3 때 뒤늦게 전공을 바꿨다. 이화여대 디자인학부(당시 장식미술학과)를 거쳐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건축조명(Architectural lighting design)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공간은 딱 그 부분만 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주변의 영향을 받게 된다”며 “음악을 공부한 덕분에 스토리와 흐름에 따라 빛을 음악처럼 그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고 대표의 조명 설계 원칙은 ‘조명기구가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조명이 눈에 띄는 주인공이 아니라 공간을 부각시키는 빛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 대표는 “경복궁 같은 경우 등기구가 서 있는 것보다 조용히 달빛이 떨어지고, 처마가 은은하게 부각되는 것이 가장 멋지다”며 “좋은 소리와 불쾌한 소리의 차이는 강약과 밸런스가 만드는 것처럼 빛도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