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는 재미
산책은 한가롭게 거닐며 이리저리 둘러본다는 뜻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여유를 즐기다 보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슬며시 풀린다.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문득 떠오른 생각은 고민 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는 오래된 장소와 노래, 인물과 음식을 소재로 한 에세이집이다. 부제는 ‘산책자를 위한 인문 에세이’.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순천만 갈대밭부터 프랑스 가수 조르주 무스타키 얘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책을 쓴 고두현은 시인이자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다. 그의 시와 산문은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입담 좋은 친구가 산책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저자도 여러 주제를 넘나들며 자연스레 지식들을 풀어낸다. 첫 번째 장 ‘길에서 만난, 반짝이는 생의 순간’에서 저자는 전국 곳곳의 명소에 얽힌 옛날이야기를 소개한다. 강원도 봉평의 장터 풍경을 소개하다 이효석의 삶과 ‘메밀꽃 필 무렵’을 이야기하는 등 물 흐르듯 화제를 옮긴다. 인천 소래포구의 풍경을 묘사하는가 싶더니 이곳에서 나는 새우를 맛있게 먹는 법을 소개해 군침을 돌게 한다.

평소 무심히 보고 지나쳤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산책과 닮았다. 예컨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의 염상섭 동상을 묘사한 글이 그렇다. “그의 옆자리는 양쪽 다 비어 있다.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 앉은 왼편으로 두어 사람, 오른쪽으로 한 사람쯤 들어가 앉으면 맞춤하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오른손에는 책이 한 권 쥐어져 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눈망울을 반짝거리던 아이들에게 읽어주려던 것일까.”

주제가 다양하면서 글의 호흡이 깔끔하다. 잠깐씩 읽으며 휴식을 취하기 제격이다. 정호승 시인은 책을 읽고 이런 감상을 남겼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인간의 삶 이야기를 저자가 산책길에서 찾아 왔다. 재미있고 진솔하고 발효된 맛이 깊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