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혐오·배척…전염병이 들춰낸 '인간의 민낯'
코로나19가 인류의 야만성을 들춰냈다. 창궐 초기 유럽과 미국에선 동양인을 겨냥한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프랑스에선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연구부장이 TV 토론회에 나와 유럽인 대신 아프리카인에게 치료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터무니없는 민간요법도 퍼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말라리아 치료제(클로로퀸)를 권장했다. 과학적 근거는 없었다. 이란에선 소독용 알코올을 마시고 수백 명이 사망한 소동도 벌어졌다.

합리적이라고 여겼던 현대 인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과 인지종교학자인 구형찬이 감염병과 인류 역사를 엮어서 고찰한 이유다. 두 저자는 전염병과 상호작용하며 진화해온 인류의 발전사를 되짚어 《감염병 인류》에 담았다. 저자들은 “코로나19로 빚어지는 혐오 현상은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인지적 행동”이라며 “바로 지금이 인간성이란 무엇인지를 되돌아볼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혐오는 감염병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성이다. 원시인이 부패한 음식이나 오염된 사물을 바라볼 때 느끼는 역겨움이 발전한 게 혐오라는 것. 개인에서 사회로 감정이 확장하면 행동면역체계가 발동된다. 회피를 넘어 음식에 관한 금기,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 등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한센병 환자를 배척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감염병을 피하려는 집단행동은 인류의 발전과 동행했다”고 설명한다.

코로나19로 다시 나타난 혐오는 어떻게 지워야 할까. 우선 우리의 악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해칠 수 있는 본성을 인정하라는 것. 언젠가는 악인이 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사회적인 혐오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감염병에 대응하는 인류의 전략이 질병보다 더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어서다. 저자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민윤리를 논의해야 한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정직하게 밝히고 지성을 공유해야 한다”며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감염병과 싸워왔다. 투쟁의 역사로 지혜를 얻는 것만이 해답”이라고 강조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