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의 무리수가 빚은 참사"…식품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박종관의 食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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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은 왜 '코로나 상술' 자충수를 뒀을까
남양유업이 섣부른 '코로나19 마케팅'으로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자사의 대표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에 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게 사건의 시작입니다.
해당 연구의 요지는 불가리스와 코로나 바이러스를 혼합해 원숭이 폐에 주입했더니 바이러스의 77.8%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방식을 실험한 결과 감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무려 99.9%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같은 연구결과가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는 '불가리스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연구결과가 나온 당일 일부 매장에선 불가리스가 품절되고, 판매량이 급증했다"며 "본사에는 사연을 모르는 점주들의 문의가 빗발쳤다"고 말했습니다.
투자자들도 환호했습니다. 남양유업의 주가는 연구결과 발표 다음날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급등해 한 때 전 거래일 대비 28.6%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호흡기로 침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마시는 음료인 불가리스가 어떻게 막아낼 지도 의문입니다. 하루종일 입에 불가리스를 머금고 다니거나, 코에 불가리스를 바르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원숭이의 폐 세포를 실험의 숙주세포로 사용했다는 점도 논란입니다. 입으로 마셔 소화기관으로 내려가는 불가리스가 폐로 들어가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실험 환경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더해 식품의약안전처는 현장조사 결과 남양유업이 해당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심포지엄 장소의 임차료도 남양유업이 대납했습니다. 연구에 사용된 불가리스 제품도 당연히 남양유업이 제공했습니다. 식약처는 이 같은 내용을 고려할 때 해당 연구는 순수한 학술 목적이 아닌 사실상 불가리스 홍보 목적으로 이행됐다며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8조 위반으로 남양유업을 고발조치 했습니다. 해당 법령에는 '질병의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 '거짓·과장된 표시 또는 광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을 위반할 경우 해당 제품을 생산한 공장은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받게 됩니다. 불가리스를 생산하는 남양유업 세종공장은 불가리스뿐만 아니라 우유와 분유, 치즈류 등 약 100여개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양유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약 38%가 이 공장에서 나옵니다.
다만 행정처분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입니다. 행정처분은 식약처가 아닌 공장 소재지의 지방자치단체가 집행합니다. 세종시 관계자는 "식약처에 보내온 현장조사 자료를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며 "빠른 시일 내에 집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양유업은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 이후 지속되는 영업 부진이 꼽힙니다. 남양유업의 매출은 2012년 1조3650억원에서 지난해 9489억원으로 8년 만에 30.5% 감소했습니다. 남양유업의 매출이 1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11년 만입니다. 갑질 사태로 무너진 이미지에 창업주의 외손녀인 황하나 씨의 마약 투약 논란까지 이어진 결과입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회사에서 일해본 사람이면 이 같은 연구결과 발표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실무자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영업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영진의 무리한 판단이 자초한 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쓰고 싶었던 남양유업의 코로나19 마케팅은 자충수로 전락하는 분위기입니다. 식품업계 종사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제품이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사먹는다"는 말입니다. 이번 사태도 결국 8년 전 '갑질 사태'로 무너진 이미지를 회복하려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한 번 망가진 이미지는 그만큼 회복하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식품업체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금 더 긴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비자들은 언제든지 등을 돌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 번 등을 돌린 소비자들은 결코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해당 연구의 요지는 불가리스와 코로나 바이러스를 혼합해 원숭이 폐에 주입했더니 바이러스의 77.8%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방식을 실험한 결과 감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무려 99.9%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같은 연구결과가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는 '불가리스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연구결과가 나온 당일 일부 매장에선 불가리스가 품절되고, 판매량이 급증했다"며 "본사에는 사연을 모르는 점주들의 문의가 빗발쳤다"고 말했습니다.
투자자들도 환호했습니다. 남양유업의 주가는 연구결과 발표 다음날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급등해 한 때 전 거래일 대비 28.6%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허점 투성이'인 연구결과
하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이 연구에는 몇 가지 허점이 있습니다. 우선 이번 연구가 세포실험 단계였다는 점입니다. 항바이러스 연구를 진행할 땐 세포실험을 시작으로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을 거쳐야 합니다. 세포실험은 조건이 제한된 실험실에서 진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의 실험입니다. 세포실험 단계에서 효과가 입증되더라도 다음 단계에서 연구 결과가 뒤집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호흡기로 침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마시는 음료인 불가리스가 어떻게 막아낼 지도 의문입니다. 하루종일 입에 불가리스를 머금고 다니거나, 코에 불가리스를 바르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원숭이의 폐 세포를 실험의 숙주세포로 사용했다는 점도 논란입니다. 입으로 마셔 소화기관으로 내려가는 불가리스가 폐로 들어가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실험 환경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더해 식품의약안전처는 현장조사 결과 남양유업이 해당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심포지엄 장소의 임차료도 남양유업이 대납했습니다. 연구에 사용된 불가리스 제품도 당연히 남양유업이 제공했습니다. 식약처는 이 같은 내용을 고려할 때 해당 연구는 순수한 학술 목적이 아닌 사실상 불가리스 홍보 목적으로 이행됐다며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8조 위반으로 남양유업을 고발조치 했습니다. 해당 법령에는 '질병의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 '거짓·과장된 표시 또는 광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을 위반할 경우 해당 제품을 생산한 공장은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받게 됩니다. 불가리스를 생산하는 남양유업 세종공장은 불가리스뿐만 아니라 우유와 분유, 치즈류 등 약 100여개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양유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약 38%가 이 공장에서 나옵니다.
다만 행정처분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입니다. 행정처분은 식약처가 아닌 공장 소재지의 지방자치단체가 집행합니다. 세종시 관계자는 "식약처에 보내온 현장조사 자료를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며 "빠른 시일 내에 집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양유업의 무리수가 빚은 참사"
식품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남양유업의 무리수가 빚은 참사"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의 보도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세포실험 단계에서 성과를 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식음료는 의약품이 아니기 때문에 제품의 성분이 아닌 제품 자체가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홍보를 해선 안 된다"며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식으로 돌려 홍보를 하려 했으나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남양유업은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 이후 지속되는 영업 부진이 꼽힙니다. 남양유업의 매출은 2012년 1조3650억원에서 지난해 9489억원으로 8년 만에 30.5% 감소했습니다. 남양유업의 매출이 1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11년 만입니다. 갑질 사태로 무너진 이미지에 창업주의 외손녀인 황하나 씨의 마약 투약 논란까지 이어진 결과입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회사에서 일해본 사람이면 이 같은 연구결과 발표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실무자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영업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영진의 무리한 판단이 자초한 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쓰고 싶었던 남양유업의 코로나19 마케팅은 자충수로 전락하는 분위기입니다. 식품업계 종사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제품이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사먹는다"는 말입니다. 이번 사태도 결국 8년 전 '갑질 사태'로 무너진 이미지를 회복하려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한 번 망가진 이미지는 그만큼 회복하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식품업체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금 더 긴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비자들은 언제든지 등을 돌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 번 등을 돌린 소비자들은 결코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