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잘 들을 환자만 골라서 신약 개발을 하는 시대가 왔다. 약효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동반진단 기술이 발전하면서다. 국내에서도 동반진단 기반의 항암제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 업체 중엔 엔젠바이오 지노믹트리 싸이토젠 등이 대표주자다.
엔젠바이오 "맞춤형 항암 진단기술로 美공략"

신약 개발 성공률 두 배 껑충

동반진단은 최근 항암제 개발을 위한 필수 수단이 됐다. 미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신약 후보물질이 품목 허가 승인을 받을 확률은 7.9%다. 반면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를 통해 미리 선별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하면 성공 확률이 15.9%로 두 배가량으로 뛴다. 바이오마커는 약효 유무를 알려주는 유전자다. 신약 개발 시 바이오마커가 양성으로 나타나는 환자만 골라 임상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동반진단 키트로 100~300개 유전자를 한 번에 분석해 환자별 바이오마커 발현 여부를 확인한 뒤 임상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동반진단을 병행한 신약 개발이 한창이다. 독일 머크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인 ‘텝메트코’로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머크는 동반진단 기업 아처DX와 협업해 텝메트코의 바이오마커 발현 여부를 확인하는 동반진단 제품도 함께 내놨다. 투약하기 전 이 동반진단 제품을 활용하면 환자에게 약효가 나타날지 미리 알 수 있다.

화이자와 노바티스도 동반진단 기업과 연계해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거나 개발 중인 신약에 쓸 동반진단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선 싸이토젠, 지노믹트리, 젠큐릭스 등이 동반진단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엔젠바이오는 국내 바이오 기업 여섯 곳과 동반진단 제품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이 중 유방암 치료제 개발을 이미 마친 해외 제약사 한 곳의 경우 엔젠바이오가 국내 처방 때 쓰일 동반진단 제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최대출 엔젠바이오 대표는 “국내 병원 15곳에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에 쓰이는 동반진단 제품과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다”며 “해외 제약사 두 곳과도 동반진단 기술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 직접 안 해도 수익 확보”

엔젠바이오는 지난해 12월부터 국내 바이오 기업 세 곳과 항암제 개발을 위한 동반진단 계약을 맺었다. 온코닉테라퓨틱스, 오토텔릭바이오에는 고형암 동반진단키트인 ‘솔리드아큐테스트’를 공급한다. 제일약품 자회사인 온코닉테라퓨틱스는 2개 표적을 동시에 공격하는 췌장암 치료제 ‘JPI-547’로 올 상반기 임상 2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최 대표는 “임상시험 환자 선별은 물론 미국 동반진단 제품 허가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오토펠릭바이오는 전이성 고형암 치료제인 ‘ATB-301’과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개발에 동반진단을 적용할 계획이다.

파로스아이바이오는 혈액암 치료제 ‘PHI-101’로 한국과 호주에서 임상 1상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후속 임상에선 엔젠바이오의 혈액암 동반진단키트인 ‘힘아큐테스트’를 쓸 예정이다. 최 대표는 “이들 신약 후보물질이 상용화되면 환자 투약을 위한 동반진단 제품도 함께 쓰이게 된다”며 “동반진단은 신약 개발을 직접 하지 않고서도 장기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동반진단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미국 연구시설도 확보할 계획이다. 그는 “미국에서 동반진단이 가능한 미국실험실표준 연구실(클리아랩) 비중은 5% 남짓”이라며 “클리아랩을 인수해 직접 운영하거나 기존 연구시설에 지분투자를 해 NGS 설비를 구축하는 두 가지 안을 동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 동반진단

특정 약물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 미리 알아보는 진단법. 임상 전 약효를 보일 환자를 선별하면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