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음반 50주년, 에세이집 '그러라 그래' 발간
"후배들과 작업은 가수 인생 마무리 준비"
양희은 "결핍이 나를 만들어…인생이 베푼 어려움, 다 고맙죠"
1971년 발표한 '아침이슬'은 그의 이름을 한 시대의 목소리로 각인했다.

그러나 이후의 반세기를 지탱해온 것은 그가 하루하루 정성껏 살아낸 세월이었다.

올해로 가수 데뷔 51년 차, 그리고 MBC 라디오 '여성시대' DJ로 속 깊은 사연들을 실어나른 지 만 22년. 한국 나이로 일흔을 맞은 가수 양희은은 그 세월을 어떻게 지나왔는지를 그저 담담히 들려준다.

최근 펴낸 에세이집 '그러라 그래'(김영사)에서다.

상암동에서 최근 만난 양희은은 "노래도, 수필도 이야기다.

선율에 얹어내는 이야기가 노래가 되고, 원고지에 쓰는 이야기가 책"이라며 "그냥 꾸밈없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22년 진행 '여성시대' 매달 기고…책으로 엮어
'그러라 그래'는 MBC '여성시대'에서 발간하는 '월간 여성시대'에 매달 실은 글들과 새로 쓴 글 등을 엮은 책이다.

'여성시대' 진행과 함께 기고도 시작됐으니 글이 쌓인 시간만 22년이다.

그는 지금도 노란색 메모 패드에 검은색 볼펜으로 글을 쓴다.

"원고 쓸 때가 되면 '아이고 한 달이 갔구나' 해요.

근데 왜 꼭 마감날 새벽에 글이 써지는지…(웃음)"
책 제목 '그러라 그래'는 양희은이 평소에도 잘 쓰는 말이다.

방송인 송은이는 한 방송에서 양희은의 이 말을 듣고 "머리를 부딪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희은은 "상황 윤리 같은 거랄까, '그 입장에 처해 보면 나라고 예외 되겠어?'라고 해보는 것"이라며 "제목만 듣고 힐링이 되는 기분이라는 소감이 '여성시대' 앞으로도 온다"고 전했다.

양희은 "결핍이 나를 만들어…인생이 베푼 어려움, 다 고맙죠"
책에는 장 봐서 밥상 차리는 생활인의 일상부터 무대와 방송에서의 에피소드, 노래에 대한 철학 등 '사람 양희은'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간단치 않았던 인생 곡절을 돌아볼 때도 그는 담백한 어조에 위트를 섞는다.

노래할 때도 '너무 과장 아냐? 너무 쥐어짜는거 아냐?' 스스로에게 묻는다는 그는 "자기가 혼자 울고 짜면 보고 듣는 사람의 몫이 없어진다"고 단언했다.

아버지를 일찍 잃고 어머니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20대 양희은은 노래로 가족의 빚을 갚고 생계를 꾸려야 했다.

"대학교 때 별명이 라면과 회수권이었어요.

눈만 마주치면 '라면 좀 사주라, 회수권 하나만 주라' 한다고. 그래도 꿔 달란 소리는 안 했어요.

갚을 길이 없기 때문에. (웃음)"
서른 살에는 난소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선고받은 석 달이 지났을 때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고 다시 DJ로 일을 시작했다.

그때 "생명을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는 말했다.

아팠던 시절 친구가 보내온 편지는 히트곡 '하얀 목련'의 가사가 되기도 했다.

"가사가 몇 달 동안 안 나왔어요.

그러다 어느 날 친구 편지를 받았어요.

'너와 같은 병을 앓던 여자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이다.

너는 잘 싸우고 있니? 봄비 맞아 목련이 툭툭 지고 있다'고요.

그 편지를 받고 새벽에 일어나 가사를 썼죠."
그는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많이 겪었다.

그런데 그게 나다.

결핍이 나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책에서 가장 각별한 글로 꼽은 에필로그에선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인생이 내게 베푼 모든 실패와 어려움, 내가 한 실수와 결례, 철없었던 시행착오도 다 고맙습니다.

그 덕에 마음자리가 조금 넓어졌으니까요.

"

◇ "후배들과 작업, 사정없이 요구하라 했죠"
올해는 그가 '아침이슬'이 실린 데뷔 음반을 낸 지 50주년이다.

그는 "방송국에서 릴 테이프에 녹음한 내 노래가 나온 건 1970년이어서 방송 데뷔로 치면 51주년"이라고 설명했다.

'아침이슬'은 시대의 열망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곧 가수 양희은의 운명이 됐다.

'아침이슬'만큼 좋은 노래를 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고 한다.

'아침이슬'을 넘어서는 노래를 냈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아니다.

그건 시대가 만드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시절 젊은이들 마음속의 답답함을 잘 풀어냈기 때문에, 히트시키려는 사심이 없었기 때문에, 또 금지가 됐기 때문에 더 들불처럼 퍼져나가게 됐다고 생각해요.

대중이 되불러주지 않는다면 그건 노래가 아니에요.

"
양희은 "결핍이 나를 만들어…인생이 베푼 어려움, 다 고맙죠"
그의 음악은 세월 굽이를 돌며 무르익고 또 변화했다.

특별히 애착을 가진 음반을 묻자 20대, 40대, 60대에 각각 발표한 세 장의 앨범을 짚었다.

김민기의 노래로만 된 첫 번째 음반인 1972년 '서울로 가는 길'(고운노래모음 2집), 미국에 살던 마흔 살 때 오스트리아 유학 중이던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만든 '1991 양희은', 그리고 2014년 선보인 정규앨범 '2014 양희은'이다.

그는 "'1991'은 '원 기타, 원 보컬'로 내가 숨을 데가 없다.

죽자고 노래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고 돌아봤다.

'2014'는 '극소심 A형'이라는 그가 잘 아는 이들과만 작업하던 데서 처음으로 벗어나 여러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한 음반이다.

이 앨범은 후배 뮤지션들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곡을 불러 싱글로 발표하는 프로젝트 '뜻밖의 만남'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로 지난 2018년까지 윤종신, 이적, 이상순, 김창기, 아스트로 비츠, 강승원, 김반장, 악뮤, 성시경 등 다양한 후배 뮤지션과 9곡을 발표했다.

프로젝트는 계속되고 있고 받아둔 곡도 있다.

"(후배들한테) 노래가 틀렸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사정없이 요구하라고 했어요.

그래야 너희가 나한테 변화를 줄 수 있지, 내 식대로 끌고 가면 이건 뜻밖의 만남이 아니라고요.

"

◇"나이 듦에 대해 생각…담백하게 사라지고 싶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무대로 2016년 11월 촛불집회 인파 앞에서 노래한 순간을 꼽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은 생에서 처음이었어요.

공연장이 아닌데 울림은 참 좋았죠. 그 별의별 얼굴과 사연을 갖고 앉아있는 사람들 위의 공기, 허공에 가득 찬 어떤 기운이 좋았어요.

귀한 무대였죠."
양희은 "결핍이 나를 만들어…인생이 베푼 어려움, 다 고맙죠"
비슷한 이유로 비대면 콘서트는 녹록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는 "공연이라는 건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화학적인 공기와 내가 접촉하는 것"이라며 "그 기운이 없으니 노래가 나가지를 않더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9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50주년 기념 공연을 계획했지만 관객 연령대를 고려해 취소하기도 했다.

팬데믹은 다른 영향도 미쳤다.

그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가사도 잘 안 나오고 머리가 탁해진 느낌"이라며 "운동선수도 슬럼프일 때가 있듯이 나도 그런 것 같다"고 털어놨다.

"노랫말은 물 흐르듯이 내 가슴 속에 고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쥐어 짜낼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지금 마음속에 고인 이야기를 묻자 "나이 듦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노래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65세 때부터 생각해왔다는 그는 "노래를 한 듯이 한 세월보다는 라디오를 한 세월이 훨씬 기니, 후배들과 힘닿는 데까지 좋은 작업을 하며 끝내고 싶다"며 '뜻밖의 만남' 프로젝트가 "마무리 준비"라고 설명했다.

책 말미에 그는 "노래와 삶이 다르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썼다.

그의 마무리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그냥 담백하게"라며 "그렇게 거대하게 방점을 찍고 싶지는 않다.

품을 팔려고 노래를 시작했듯 그만둘 때도 슬며시 사라지면 되는 것"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