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일 “내년 3월 대선에서 정권을 바꾸려면 서울시장 선거와 같이 범야권 대통합을 해야 한다”며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면 (주연, 조연, 연출자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어떤 역할도 맡겠다”고 밝혔다. 4·7 재·보선 선거 결과에 대해선 “더불어민주당이 자기 세계에 갇힌 결과 중도층을 잃었다”며 “야권이 중도층으로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분석했다. 안 대표는 이날 여의도 국민의당 중앙당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범야권 대통합이 유효하다는 사실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명쾌하게 입증됐다”며 이 같이 밝혔다.

◆ 야권 승리 목표 달성

안 대표는 재·보궐 선거 이후 언론 인터뷰를 고사해왔다. 그는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정치인 오세훈이 조명을 받아야 하는 시기였다”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 보였다.

안 대표는 4·7 재·보선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여당 성향이 강한 서울의 과거 역대 선거에서 18%포인트차로 압승한 전례가 거의 없었다”며 “엇비슷한 결과가 나온 4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이 야권의 손을 들어줬다, 명백한 단일화의 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았던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경우 18~40세 연령층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못 미쳤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제시했다. 안 대표는 ‘결국은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제가 이루려고 했던 목표(야권 승리)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선거에선 서울 시장이라는 자리보다는 야권의 승리라는 ‘대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야권의 대선 후보 통합 경선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야권에서 윤 전 총장에 대해 일관되게 좋은 평가를 내리는 정치인이 바로 저”라며 “윤 전 총장은 정권 교체를 바라는 민심을 담고 있는 거대한 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그는 윤 전 총장에게 해 줄 조언을 묻는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윤 전 총장 지지율 보다 중요한 것은 범야권의 대통합”이라며 “이번 서울시장 선거처럼 야권의 대선 후보를 하나의 무대에 모두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고건 전 국무총리처럼 빠르게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윤 전 총장이)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며 “정치권 경험이 전무했던 저도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몇달간 지지율이 거의 하락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당시 대선을 한달 여 앞두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현재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양보하고 후보직을 사퇴했었다. 그는 ‘정권 교체를 위해 어떤 역할을 맡겠냐’는 질문에 “제가 연출, 조연, 주연 어느 역할을 맡을 지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는 칼럼이 회자된 걸로 안다”며 “필요한 어떤 역할도 하겠다”고 강조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아쉬움도 살짝 내비쳤다. 안 대표는 ‘올해 초 국민의힘에 입당했다면 서울시장이 됐을 것’이라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적에 대해 “동의한다”면서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당시 국민의힘에 곧바로 입당했다면 이에 실망한 중도표가 이탈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한 이유를 묻자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를 꼽았다. 그는 “LH 사태가 터지니 (야권에서) 누가 나와도 이길 수 있는 구도가 돼버렸다”고 했다.

◆ 국민의힘과 조기합당에 신중

그는 이번 대선에서 ‘2030’ 젊은층이 여권에 등을 돌린 이유에 대해 “선거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민심으로 드러났다”며 “감수성이 떨어진 기성세대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안 대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예로 들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표팀으로 선발된 선수를 남북한 단일팀을 위해 떨어뜨리는 게 젊은세대들에겐 불공정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며 “정의와 공정에 가장 민감한 세대를 기성세대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출산, 연금 개혁 등 나라가 망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검찰 개혁만 외치고 있으니 표로 심판받은 것”이라고 했다. 안 대표는 정권 교체를 위해선 “야당이 더 유능하고 도덕적이며 공정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며 “내년 대선 정권교체의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 현안인 국민의당과 국민의힘 간 합당 문제에 대해선 신중론을 견지했다. 안 대표는 “과거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으로의) 합당을 추진할 때 신속한 결정을 위해 당원 투표로 밀어붙인 결과 합당이 아닌 분당 사태가 났다”며 “우리 당엔 그 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소통과정을 제대로 거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합당 과정에 이득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만 “현재까지 세 군데 시도당 의견을 들어보니 당장 합당하자는 의견, 새로운 국민의힘 지도부와 합당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 등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전국 시도당 의견을 수렴한 후 최고위원회의에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같은 당이 되더라도 중도개혁 성향,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안으로 양당 합당을 결의하자는 국민의힘 지도부 측 분위기와는 큰 거리가 있다.

◆ “중국 포기하고 미국 선택해야”

안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최근 김부겸 국무총리 지명 등 개각과 청와대 참모진 개편 인사에 대해 “선거 참패 결과를 놓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변인 명의로 고작 100자 정도의 논평을 냈다”며 “정책을 바꾸거나 변화하겠다는 의지, 진정성 등을 전혀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을 예로 들며 “사실상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시대에 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지 전략을 짜기는 커녕 기술 전쟁의 개념 자체도 모르는 것 같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 중 어디를 선택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주저없이 “미국을 택해야 한다”며 “모든 기술 분야를 미국이 선도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과도 상호보완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전략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와 기업도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며 “미국과 기술동맹을 맺으면서 중국과의 교류과정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동욱/이동훈/성상훈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