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복숭아꽃이 피면
강원도는 확실히 봄이 변덕스럽습니다. 며칠 전 반팔 옷을 입고 다니는 젊은이를 보았는데, 그 다음날 대관령에 사는 중학교 동창이 그곳에 아직 씨를 뿌리지 않은 고랭지 채소밭에 하얗게 내린 눈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과수나무들이 차례로 꽃을 피웁니다.

춘천에서 과수원을 하는 시인이 작가들 모임방에 복숭아밭 사진을 올렸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김유정문학촌에도 개복숭아꽃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복숭아도 백도, 황도, 수밀도, 천도 등 여러 품종이 있는데 품종 따라 꽃 색깔이 다른지 물어보았습니다. 시인 말로 산에 들에 피는 개복숭아꽃이 좀 더 붉은 색이 나고, 다른 복숭아들은 대개 비슷하다고 합니다.

과수밭의 복숭아들은 먼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저편 언덕에 한 무더기의 분홍색 구름처럼 피어납니다. 같은 분홍색이어도 진달래꽃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처연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습니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그대로입니다. 꽃빛도 그다지 화사하지 않아 색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같은 분홍색이어도 복숭아꽃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러는 동안 바람이 불어와 꽃잎이라도 날리면, 그 바람이 저쪽 산모롱이에서 불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 마음 속에서 불어오는 것인지조차 모르게 사람을 혼망하게 합니다. 남녀 사이의 색정을 상징하는 말로 ‘도색’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도색잡지’ ‘도색영화’ ‘도화살’ 모두 복숭아 도(桃)자를 씁니다. 우리 마음 안의 색정이 복숭아꽃 빛깔을 닮았다는 것이겠지요.

제 어린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연분홍색 꽃구름처럼 복사꽃이 피어난 과수원 너머로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어오르면 밭으로 일을 하러 나온 남정네들 마음이 싱숭생숭해 더 이상 일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에라,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밭 매다가 내가 안 보이거든 동네 처녀 손잡고 봄놀이 간 줄 알아라. 복숭아나무 가지에 호미를 걸어두고 저 멀리 지나가는 동네 처녀들을 향해 휘파람을 휙휙 불어대다가 자기가 밭에 낫을 들고 왔는지 호미를 들고 왔는지조차 잊어버리고 그냥 돌아갑니다.

그리고 여름 지나 과수원의 복숭아를 다 따고 나면, 그 복숭아밭 어느 나무에 호미 한 자루가 걸려 있지요. 지난봄 과수원집 일꾼이 동네 처자에게 눈이 팔려 거기에 호미자루를 걸어둔 것도 잊어버리고 그냥 밭을 떠난 때문입니다. 여름 내내 비를 맞아 호미날은 벌겋게 녹이 슬고, 호미자루도 거무스름하게 썩어 들어갑니다. 가을에 그 호미를 거두며 과수원집 주인은 자기도 그 마음 젊은 시절 다 겪었다는 식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어이구, 올해도 여기 도화살 입은 호미 하나 걸려 있네.”

사람만 봄바람에 도화살을 입는 게 아니라 애꿎은 호미도 꽃피고 열매 맺을 때까지 복숭아밭에서 장맛비를 맞으며 말 그대로 도화살을 입는 거지요. 바로 그런 봄날입니다.